트로트야말로 만들어진 전통이다. 트로트라 쓰고 ‘도롯또’라고 발음하든, 그저 뽕짝이라고 하든 우리가 들으면 바로 구별할 수 있는 대중가요들이 있다. 케이블 채널을 넘어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장악한 이 음악을 두고 왜색이니 저질이니 상스럽니 하며 비판하는 일조차 무색하다. 유래가 의심스럽고 발전에도 굴곡이 많았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 대중가요에 속한 고유 양식으로 간주된다.
한때는 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데 해명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식민지 시대의 한을 담았다든지, 전후 실향민의 고난을 표현했다든지, 경제성장기에 고향을 떠난 서민의 삶을 반영한다든지 하는 말들이 그랬다. 이는 모두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구차한 변명처럼 들렸다. 일본의 엔카와 유사한 가락과 박자인 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어깨를 흔들면서 노래를 흥얼대는 자신을 발견할 때 특히 그랬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제2의 트로트 부흥은 더 이상 어떤 죄책감 비슷한 것도 없이 노래해도 좋다는 해방감과 무관치 않다.
나는 최헌, 조용필, 윤수일과 같은 한국 록음악의 별들이 갑자기 트로트를 부르기 시작할 무렵에 성인이 된 사람이다. 그때 뽕필이 가득한 가락에 취흥을 느낄 때마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고, 그래서 고집스럽게 그 가락과 박자를 피했다. 그러다 알게 됐다. 내가 즐겨듣는 음악의 장르가 무엇이든, 어느 나라 말로 부르든 상관없이 빠져드는 가락과 박자의 조합이 있는데, 그게 그 특유의 오음계로 감아서 몰아치는 박자였다. 이유 없이 좋은 음악에는 뽕필이 있었고, 새롭고 진보적으로 들리면 뽕필에 더한 요소가 절묘해서 그랬다.
트로트를 다른 음악 장르로부터 차별하려는 시도는 이미 난감한 일이다. 트로트 경연 방송을 보면, 이른바 정통 뽕짝부터 각 민족의 민요, 컨트리, 스탠더드, 디즈니 발라드, 테크노, 유로댄스, 그리고 펑크와 랩까지 들을 수 있다. 최근 유행한 ‘테스형’은 얼핏 1970년대 세계음악 경연대회에 출품한 곡처럼 들리는데, 러시아 음계에 나훈아 특유의 꺾기 발성을 더한 스탠더드 팝이라 해도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다. 통절한 가락에 절묘한 가사를 더하면 트로트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록음악의 대표적인 기타 리프에서 가락진 오음계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신중현의 ‘미인’부터가 그랬다. 1990년대에 유행한 댄스음악을 듣다보면 뽕필을 빼고 왜 성공했는지 말하기 어렵다. 지금도 노래방 명곡으로 남아 있는 영턱스클럽의 ‘정’이 대표적이다. 우리 록음악은 미군기지 클럽음악에서 유래하고 댄스는 전자매체를 타고 미국에서 건너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태평양을 건너 동해를 지난 음악은 우리 특유의 구성진 가락과 뽕짝 리듬에 녹아든다.
아마 전통이란 게 모두 그럴지 모른다. 강과 바다를 건너온 외래문화를 녹여내는 용액처럼 작용하지만, 그 자체도 오래전에 건너왔기에 그런 용해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고, 심지어 우리라는 용어에 포함하는 사람들마저 그럴지 모른다. 종족과 민족의 정체성이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만들어 가는 산물이란 뜻이다.
트로트를 논하는 일은 우리 가요의 정체성이 얼마나 모호한지, 그런 채로 얼마나 우여곡절을 겪고서 여기까지 왔는지 고백하는 일이 되고 만다. 이런 고백들이 모여 한국 대중가요의 전통에 대한 담론이 된다. 그리고 전통 그 자체를 만들어 낸다. 결국 뽕짝은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숨길 수 없는 전통이 됐고, 뽕필은 민족 정서의 정수의 일부가 됐다. 이 사태가 가르치는 바가 적지 않은데, 그중 으뜸은 이것이다. 민족적 양식의 기원을 따지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양식이 어쩌다 전통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