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2)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시대정신은 단수일까, 아니면 복수일까.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시대정신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경제성장의 산업화 시대정신에서 정치·사회발전의 민주화 시대정신으로 이어졌다. 민주화 시대까지 시대정신은 단수였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민주화 시대일까. 어떤 이는 민주화 시대라고 보고, 다른 이는 민주화 이후의 시대라고 파악한다. 한편에선 경제민주화 등 민주화 과제가 미완이기에 민주화 시대가 지속된다고 엄호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민주화가 갖는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소진됐기에 민주화 이후 시대가 열렸다고 강변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민주화 이후 시대의 명명은 세계화, 선진화, 복지국가 등 여러 개념들이 제안됐다. 세계화는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에 국민 다수가 소망하는 가치의 집약인 시대정신에 어울리는 개념이 아니다. 선진화와 복지국가는 시대정신에 부합한 개념이지만, 사회적 합의를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선진화는 보수적 시민들에게 설득력이 높았던 반면, 복지국가는 진보적 시민들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21세기에 들어온 후 시대정신의 역사를 이렇게 돌아볼 수 있다면, 시대정신은 단수라기보다 오히려 복수일 터다. 시대정신이 복수인 까닭은 더 있다. 그것은 현재와 미래의 도전이다. 나는 최근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입구에 서 있다고 본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비서구사회에서 경이로운 발전을 성취해온 우리 사회의 현주소에 대해 국민 다수는 작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다. 지나간 역사는 전체적으로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현실이 크게 불안하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만과 불안을 낳은 원인은 두 가지다. 먼저 현재적 관점은 공정의 훼손이다.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언명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다. 문제는 여론조사들이 보여주듯 적지 않은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가 기회와 과정에서 평등하거나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최근 LH 사태의 경우, 비리의 구조적 기원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까지 소급할 수 있더라도, 그 관리 및 감독의 책임으로부터 현 정부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다수 중도층의 이반은 공정한 대한민국을 내걸었던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정은 평등과 정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또 일종의 암묵지(暗默知)다. 사회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위계적일 수밖에 없더라도, 부당한 방법과 수단으로 부와 권력을 얻었다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불공정하다는 감각을 갖게 된다. 이 불공정의 감각은 상대적 박탈감을 낳고, 이 박탈감은 불공정의 감각이 누적되면서 분노로 진화한다. 곧 치러질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정권심판 여론이 높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 미래적 관점은 과학기술의 도전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과학기술혁명의 진행을 앞당기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코로나19는 국가의 귀환, 케인스주의의 복권, 비대면사회의 도래, 비규칙적 바이러스 폭풍의 예고, 지구적 각국도생(各國圖生)의 강화를 낳고 있다. 특히 기술적 관점에선 비대면 테크놀로지와 플랫폼 비즈니스의 약진을, 경제적 관점에선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과학기술과 팬데믹이라는 위험사회가 결합해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사회는 ‘뉴노멀 2.0 사회’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이다.

뉴노멀 2.0 사회에 요구되는 것은 ‘강하고 유능한 정부’다. 경제의 불확실성과 위험의 상시화라는 미래의 도전에 맞서 정부는 시장을 적절히 제어하고 안전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강한 존재이자,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국민 다수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유능한 존재여야 한다. 정부는 ‘미래의 디자이너이자 해결사’가 돼야 한다.

자, 결론을 내리자. 시대정신이 복수라면,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공정사회’와 ‘해결사로서의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은 언제나 정직하다. 최근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2022년 3월9일 대선까지는 아직 적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다. 이낙연 전 총리, 정세균 총리, 김부겸 전 장관,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아니면 시선 밖에 놓인 인물 모두에게 기회는 열려 있다. 국정을 떠맡고자 하는 리더라면 시대정신을 올바로 읽고 준비하길 바라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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