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현재와 미래읽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5월은 가정의달이다. 5일은 어린이날이었고, 8일은 어버이날이었다. 21일은 부부의날이다. 이 5월에는 누구나 한번쯤 가족을 돌아본다. 나의 경우 가족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이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내가 기억하는 우리 세대 가족의 초상은 이처럼 시리다. 마음 아픈 풍경이 먼저 소환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학적으로 가족이란 이채로운 존재다.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공동체다. 인간은 국가와 시장이라는 제도 속에 살아가는 동시에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 터 잡고 있다. 고전적 시각에서 가족은 혼인과 출산으로 연결된, 정서적으로 더없이 친밀한 1차집단을 의미했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선 핵가족이 빠르게 확산됐다. 가부장제와 사적 친밀성은 핵가족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었다.

주목할 것은 20세기 후반에 가족이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서구의 경우 가족의 형태는 ‘가족(the family)’이 아니라 ‘가족들(families)’로 존재한다. 전통적 가족 외에 한부모 가족 또는 재결합 가족, 그리고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가족 등이 존재한다. 21세기에 들어와선 가족을 말할 때 하나의 보편 모델을 상정하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뤄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가족은 크게 변화해 왔다. 핵가족의 증대와 가족의 소규모화가 가족 변동을 이끌었다. 여기에 최근 1인 가구의 증가, 저출산·고령화의 강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족 변동이 계속되고 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1인 가구의 변동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0.2%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가족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선 두 사회학자의 연구가 주목할 만하다. 먼저, 김동춘은 <한국인의 에너지, 가족주의>에서 우리나라 가족의 역사적 특징을 주목한다. 김동춘에 따르면, 한국의 근대는 독자적 자유와 책임을 한 몸에 지닌 서구적인 ‘개인’의 탄생사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유기적 단위 속의 개인인 ‘가족 개인’의 탄생사였다. 김동춘은 우리나라 가족과 가족주의가 극히 불안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식처이자 도피처이며, 국가와 시장의 폭력을 버텨내는 울타리였다고 분석한다. 나의 체험을 돌아봐도 날카로운 통찰이다.

한편, 장경섭은 <내일의 종언?>에서 우리나라 가족의 특징을 ‘가족자유주의’로 포착한다. 가족자유주의는 서구 자유주의를 핵심 가치로 채택하되, 그 자유와 책임의 기본 단위를 개인이 아닌 가족에 놓아두고 있다. 장경섭에 따르면, 이런 독특한 가족주의는 개발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며 형성된 ‘상황적 구성물’이다. 가족 의존적 경제사회 체제는 가족자유주의와 장기간 결합해 있었고, 그 결과 만성적 가족피로 증후군이 나타났다. 더하여,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비혼·만혼의 증가, 저출산의 강화, 노인자살의 증가 등 가족 재생산 위기가 구조화됐다. 이러한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장경섭은 가족자유주의 정치경제와 사회정책의 총체적 전환을 요구한다.

두 사회학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우리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 가족의 특수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게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가족과 가족주의가, 최근 저출산·고령화 경향이 증거하듯, 새로운 전환의 지점에 이미 도달해 있다는 점이다. 특히 ‘100세 시대’의 개막에서 볼 수 있듯, 고령사회의 도전은 빈곤·고용·복지 등 경제·사회정책 전반의 변화를 촉구한다. 요컨대 한국적 가족과 그 위기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이에 기반한 정책 모색 및 추진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될 것이다.

가족의 초상은 어떤 색일까. 나의 경험을 돌아볼 때 화려한 색깔은 아닌 듯하다. 유채색이 아닌 무채색인, 애틋하지만 삶에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그런 색깔이 아닐까.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의 마지막 구절이다. 가정의달을 맞아 우리 시대 가족의 초상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여기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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