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를 탓하기 전에

양권모 편집인

문재인 대통령이 “검증 실패가 아니다”라며 무안주기식 인사청문회를 탓하는 순간, 어쩌면 결말은 정해졌다. ‘국민 눈높이’를 앞세우던 여당 지도부가 먼저 물러섰다. 의원총회에서도 반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어제 국회에 3명의 ‘논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14일까지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임명 수순에 들어간 꼴이다. 그나마 재송부 시한을 나흘로 주고 뜸을 들이는 건 일방독주에 대한 여론 악화가 부담스럽기 때문일 터이다. 다분히 구색 갖추기 느낌이 강하지만, ‘재송부 시한’ 동안 인사 역주행을 스톱시킬 일말의 기회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쥐고 있다.

양권모 편집인

양권모 편집인

무안주기식 인사청문회를 탓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인사청문회도 있었다. 여야 만장일치로 청문보고서를 채택, 이미 장관직을 수행 중인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되돌려 보자. 도덕적 흠결만 따지는 청문회가 아니었다. 신상털기도, 무안주기도, 여론재판도 없었다. 7대 인사 배제 원칙은 물론 일체의 비리 의혹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얼마나 오랜만이었으면 야당 청문위원들조차 “비리 문제를 얘기하면 서로 참 민망한데 그렇지 않게 살아주셔서 고맙다”고 했을까 싶다. 도덕성 검증과 흠결 파헤치기가 소용없게 되자 청문회는 정책과 능력을 따지는 본연의 기능을 발휘했다. 매번 정책과 능력 검증이 뒷전으로 밀리고 도덕성과 흠결만 따지는 청문회가 되는 것은 제도나 야당 탓이 아니다. 사전 검증이 엄정하게 이뤄지지 못해 고위공직 후보자로 흠결투성이 인사가 추천되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같았던 ‘안경덕 청문회’가 정면교사다. “능력은 그냥 제쳐두고 오로지 흠결만 놓고 따지는 무안주기식 청문회”(문 대통령)를 만든 책임은 청와대에 더 있다.

사실상 마지막 개각 인사도 상처투성이다. 대부분 장관 후보자들마다 탈세, 위장전입, 투기, 논문 표절 등 ‘필수 항목’ 한두 개에 듣도 보도 못한 신종 의혹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논문 내조’ 의혹에 국비 지원 해외 세미나 가족 동반, 도자기 밀수와 불법 판매 의혹, 세종 아파트 특별공급 차익 등이다. ‘작은 흠결’ ‘관행’으로 퉁치고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들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압도하는 게 증좌다. 문제는 청와대가 검증 단계에서 이들 흠결을 ‘놓친 게’ 아니라 ‘문제될 게 없다’고 넘어갔다는 점이다. 사실 여태껏 중도 낙마하거나 야당 동의 없이 임명 강행된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적 문제는 대부분 청와대 검증에서 걸러진 사안들이다. 검증 잣대가 시민의 눈높이에서 너무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제는 어지간한 도덕적 흠결에는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눈치다. 상식적 기준에도 미달하는 인사가 고위공직에 오르는 일이 되풀이되니 문재인 정부 인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인사가 잘못되면 정책처럼 ‘실패’가 아니라 ‘참사’로 일컬어진다. 대통령 통치행위의 핵심이 인사이기에 이게 실패하면 그만큼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청문보고서 재송부 요청 시한인 14일이 지나면 서른 명을 넘게 된다. 청문회에서 야당의 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임명된 고위공직자 숫자다. 국무위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야당의 반대에도 임명된 사례는 노무현 정부 3명, 이명박 정부 17명, 박근혜 정부 10명 등 도합 30명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4년 만에 역대 정부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아지게 됐다. 야당의 정쟁적 반대 탓도 있지만, 애초 부적격, 도덕적 흠결 인사를 추천한 것이 근인이다.

문재인 정부 4년을 거치면서 인사청문회가 유명무실해졌다. 청문 결과와 상관없이, ‘야당 패싱’ 임명 강행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가 ‘부적격자’의 임명을 포장하는 과정으로 변해 버렸다. 인사청문회는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견제하고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재를 발탁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공직자의 윤리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사회 전반의 도덕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인사청문회를 무력하게 만들어 놓은 건 곧 십수년에 걸쳐 쌓아온 이 공직 윤리 기준을 허물어뜨린 중대 과오다.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면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청문회도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일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그만큼 용인(用人)과 검증에 당당하지 않다면, 애먼 청문회를 탓하며 ‘부당 인사’를 변호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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