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응석받이로 만드는 일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마음의 역병일지도 모른다. 혐오와 증오, 모욕과 비하에 민감한 상태를 넘어 스스로 증오의 화신이 되는 징후를 보면 그렇다. 초기 증상은 타인의 발언으로 상처받은 마음의 상태를 과시적으로 드러내면서 시작한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모여 타인의 혐오에 자동으로 반응하게 된다. 혐오를 격렬하게 미워하다 보니 관찰과 성찰도 필요 없다는 듯 행동한다. 이것도 모욕이고, 저것도 멸시라는 게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에 비춰 자명하다고 믿는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들을 그저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고 치부할 수 없다. 그 마음은 이미 혐오와 증오의 상징을 찾아서 없애야 한다는 분노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혐오를 표현하고 증오의 상징을 남기는 동료 시민을 국가 권력을 동원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라고 믿어주기 민망한 경우가 있는데, 대통령마저 시민으로부터 모욕당했다는 이유로 국가의 형벌권을 들었다 놨다 하기 때문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다시 밝힌다. 나는 오랫동안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확대하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를 이유로 벌어진 범죄는 가중해서 처벌하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자기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혹은 다른 이의 심리적 안녕을 위해서 동료 시민의 정치적 발언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그런 주장은 억압적이고, 반민주적이며, 심지어 약간은 병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모욕죄가 고약하다. 이 법은 오래된 계급사회에서 존엄한 왕과 귀족을 욕되게 한 자를 처벌하던 관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의 원수나 외교사절을 모욕한 자를 처벌하는 형법 제107조에 남아 있는 흔적을 보면 그렇다. 문제는 일반 시민들 간에 경멸, 무시, 멸시 등을 처벌하는 형법 제311조 모욕죄다. 이 죄는 시민들 간의 사회적 평판을 보호하는 명예훼손죄와 달리, 발언 내용이 구체적 사실인지 여부조차 따지지 않는다. 우리 모욕죄는 또한 발언의 목적이 공익을 위한 것인지, 발언의 대상이 공직자인지도 고려하지 않는다.

모욕죄는 정치적 남용에 취약하다. 경멸과 비하라는 감정의 표현과 인격비하라는 추상적 판단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민주정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시민들 사이에 정치적 판단과 이념적 평가를 교환하는 일이 불가피한데, 모욕죄는 그런 판단과 평가에 국가가 개입해서 처벌해도 좋다는 제도적 기반을 깔아준다. 공직자와 사회적 강자들이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발언을 탄압하기 위해 이 법을 남용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보적 법률가들은 모욕죄가 발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며,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다른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에 위헌적이라 말했다.

최근 증오발언을 처벌하는 법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규제론자 중에 현행 모욕죄를 확대해서 적용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견지하는 이들도 있다. 모욕 발언의 효과가 모호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생각은 모욕적인 내용을 처벌하겠다는 포괄적 내용 규제가 될 우려가 다분하다. 내용 규제가 아니라고 확증하려면 혐오, 증오, 경멸 등을 표현한 발언이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 해악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내가 아는 한 그런 효과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연구는 없다.

오히려 반대의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모욕이나 경멸, 혐오나 증오를 표현하는 발언을 처벌함으로써 시민들이 타인의 견해를 검토하고, 논쟁하고, 저항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쌓는 일을 방해할 수 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이를 ‘시민을 응석받이로 만드는 일’이라 비판했다. 그는 <나쁜 교육>이라는 책에서 시민, 특히 젊은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상처받는 마음을 돌보겠다는 미명으로 오히려 성마르고 쉽게 부서지는 시민을 육성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강건하고, 포용력 있는 시민이 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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