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기를 바라는가!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한철 위해 짓는 어설픈 새집만큼
코로나 상황 사람의 생명도 위태

평화로운 인간세계를 만들려면
타인 위해 노력하는 사람 늘어야
그런 세상이 오기를 두 손 모은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비가 잦다. 이 시기의 비는 여름을 재촉하는 비라서 맵다. 바다 가까이 살다보면 비 오기 전에 바람이 먼저 오는 것도 알게 된다. 어느 때 오랜만에 만난 선배 스님과 늦은 밤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늦게서야 설핏 잠을 청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비바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혼잣말로 “숲속에 산새들은 안녕한가! 지금쯤이면 한창 알에서 나온 작은 새들이 위태로운 새집에 매달려 전전긍긍할 터인데…”라고 읊조리니, 선배 스님이 “산에 오래 살다보니 숲에 있는 동물들까지 식구로 걱정하는군” 하며 웃는다. 사람의 집은 수백년 여러 세대가 살 수 있게 튼튼하게 짓지만, 새들은 한철만을 위해 얼기설기 허술하게 집을 짓는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꽃이 유난히 만발했던 지난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두 분을 인사도 없이 보낸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린다. 사람의 생명도 코로나19 앞에서는 새들의 둥지만큼이나 허술하고 위태롭다는 것이 마음을 위축시킨다. 코로나19로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에 주변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주춤거리게 되고, 대중이 모이는 곳 가기를 꺼리다보니 사람의 도리를 놓치곤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만에 유산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기쁜 표정으로 찾아왔다. 어떤 유산이기에 그리 기쁘냐고 물으니, 어머니가 평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이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바라는 바가 성취되길 바랍니다’라고 중얼거릴 때는 창피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전철이나 영화관에서 어머니처럼 그렇게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비 맞은 사람처럼 독백으로 중얼거릴 때가 종종 있었다. 자신을 아주 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이다. 그때 나는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러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해주세요’라며 그분들의 장수를 기원하곤 했다.

내게 이런 중얼거림이 생겨난 것이 어느 때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달라이라마의 81세 생신을 기념해 장수기원을 하는 법회에 참석하고부터였다. 조금은 생경한 명칭의 법회여서 망설이다가 참석한 것으로 기억한다. 법회는 먼저 석존의 깨달음인 ‘모든 사물은 연기적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가르침을 자세하게 살피고, 중생들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가르침인 ‘사무량심’을 소중하게 암송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러고는 법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그 법을 전하는 스승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법회였다. 의미 있는 행사이기에 매년 때가 되면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 법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지리산 화갯골 벚꽃 필 무렵 사바를 떠나가신 쌍계사의 고산 스님도 미소가 참 아름다웠다. 스님은 법문 청하는 곳이 있으면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흔연히 노구를 움직이셨다. 나와의 인연은 1994년 조계종의 개혁운동 때로, 불교가 안팎으로 어지럽던 시절이었다. 당시 공부하는 학인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혼란을 벗어날 길을 쌍계사까지 찾아가 물으니, 당신께서는 서울까지 노구를 이끌고 올라와 중앙승가대 학인스님들에게 포살(계율정비)을 해주셨다. 스님들의 죽음을 입적이라고 부른다. 안온한 열반의 세계로 들었다는 말이다. 큰스님들이 열반에 들면 남은 사람들이 정형구처럼 염원하는 말이 있다. “속환사바(速還娑婆) 광도중생(廣度衆生)하소서!”가 그것이다. 사바세계로 빨리 다시 오셔서 이번 생처럼 많은 사람들을 어리석음에서 구제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물론 이 청은 가시는 분의 생각과는 무관한 남은 사람들의 바람일 뿐이다.

사바의 모든 모순과 투쟁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언행일치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자신보다는 많은 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오래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런 세상이 오기를 오늘도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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