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사과꽃

비 맞는 꽃잎들 바라보면

맨몸으로 비를 견디며 알 품고 있는

어미 새 같다

안간힘도

고달픈 집념도 아닌 것으로

그저 살아서 거두어야 할 안팎이라는 듯

아득하게 빗물에 머리를 묻고

부리를 쉬는

흰 새

저 몸이 다 아파서 죽고 나야

무덤처럼 둥근 열매가

허공에 집을 얻는다

류근(1966~)

시인은 비를 맞고 있는 사과꽃을 보고 있다. 하얀 사과꽃에서 “알 품고 있는” 흰 어미 새를 떠올린 것으로 보아 꽃잎 아래 작은 열매가 맺히는 낙화 무렵이고, “흰 새”는 개울가 자갈밭 잔돌 사이에 알을 낳는 흰물떼새가 아닐까. 먹을 것을 찾아 들로 산으로 쏘다니던 어린 시인은 우연히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맨몸으로” 둥지를 지키고 있는 “어미 새”를 발견한다. 알을 품고 있던 어미 새는 들킨 줄도 모르고 한쪽 날개를 다친 양 낯선 침입자를 유인한다.

시인은 어미 새를 통해 “그저 살아서” 자식들을 거두어야만 했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말도 아니고 몸도 아닌 한 눈빛으로만/ 저물도록”(‘낱말 하나 사전’) 버릴 수밖에 없던 어머니. “안간힘도/ 고달픈 집념도 아”니라 했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 자식이라는 열매를 맺곤 무덤으로 가는 것이다. 살아생전 집 한 채라도 마련해줘야 편안히 눈 감을 수 있다. 어머니라는 꽃은 ‘무일무춘풍(無日無春風)’이다. 즉 날도 없고 봄바람도 필요 없다. 무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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