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대’를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칼럼에서 주어를 ‘우리’가 아닌 ‘나’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이다. 당시 서구 개인주의 물결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모호하다. 나는 분명하다. 나의 욕망·이익·가치를 선행하는 건 없다. ‘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너무도 당연한 이 논리가 철학에서는 자명한 이치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그 대표 담론이다. 그런데 내가 공부하는 사회학에서 ‘나’, 다시 말해 ‘개인’을 새롭게 발견한 것은 1980년대였다. 선구자는 울리히 벡이다. 벡은 <위험사회>에서 ‘개인으로서의 나’를 주목했다. 개인적 차원에서 위험사회론의 핵심은 ‘인지적 주권’의 위협이다. 위험사회의 도래는 이제 개인에게 자기 삶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해가야 하는 과제를 안겼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일까. 개인으로서의 내가 자유롭지, 행복하지 않은데, 사회라는 공동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벡이 말하는 ‘자유의 아이들’은 그렇게 등장했다.

철학자들이 오래전 발견했던 것을 사회학자들은 뒤늦게 깨달았던 셈이다.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개인의 자율보다 공동체의 구속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나의 사회학’의 또 다른 대표자다.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한다’는 그의 말은 21세기 사회의 그늘을 간명히 요약한다. 인공지능·플랫폼·블록체인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전환 속에서 정작 나의 삶이 불확실하고, 불안하며, 자주 분노를 느끼는 것이 ‘나의 시대’의 사회학적 초상화다.

여기서 ‘나의 시대’를 소환한 까닭은 ‘이준석 돌풍’에 있다. 이준석 돌풍의 명암에 대해선 지난 칼럼 ‘한국 보수를 생각한다’에서 세대교체 열망과 젠더 균열 부상의 관점에서 말한 바 있다. 이 돌풍에는 정권교체 열망 또한 담겨 있다. 이준석이란 정치적 플랫폼에 대한 청년세대 다수의 열광적 반응을 지켜보면, 이준석 돌풍은 4월 재·보궐 선거에 이어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준석 돌풍에 대한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의 엇갈린 평가다. 정권교체의 현실성을 엿본 보수는 환호하는 반면, 정권 재창출의 불길함을 느낀 진보는 유보적 태도를 보인다. 특히 진보는 ‘이준석식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공동체적 연대를 훼손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공정 담론 비판을 떠올리게 하는 이 논리는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이준석식 능력주의가 갖는 힘, 곧 기회의 공정에 대한 요구는 적지 않은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내가 주목하려는 바는 정권교체를 넘어선 세대교체와 시대교체의 문제의식이다. 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정치가 2020년대 ‘뉴노멀2.0’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혁신에 부응하고 불평등을 완화시켜야 한다. 적어도 이제까지 이 대표의 논리는 구조적 혁신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에 대한 이 대표의 태도와 스타일은 기성세대와 분명히 구별된다.

내가 강조하려는 바는 이 대표의 태도와 스타일이 바로 ‘나의 시대’의 도래를 증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기성세대의 관습과 문법과 권위와의 과감한 결별이다. 이러한 결별을 보여주는 또 한 사람의 정치인이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다. 장 의원은 관성화된 보수 대 진보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난 청년세대의 문제의식을 대변하고, 나아가 이준석식 능력주의와는 다른 결의 소수자 인권을 위한 제도 개혁을 요구한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치에서도 세대교체를 이뤄야 할 때가 됐다. 이 세대교체가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선 시대교체와 결합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서 ‘나의 시대’로의 이행이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 우리는 공존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개인의 자율 못지않게 공동체의 안전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문제는 ‘나의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이 도도한 물결이 역전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생산적 공존을 위한 더 많은 토론이 요청된다.

시대의 변화를 거역하기 어렵다면, 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게 순리다. ‘더 많은 이준석들’, ‘더 많은 장혜영들’이 등장해 우리 정치와 사회가 풍성해지길 소망하는 한 기성세대 사회학자의 생각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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