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사는 걸 실감하는 순간 중 하나가 택배를 주문할 때다. 이곳은 우편 서비스나 물류 배송이 대도시보다 현저히 늦고, 국내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다. 물품을 주문하면 배송되는 데 보통 사나흘 걸린다. 기상상태나 운송 일정에 따라 닷새 이상 소요될 때도 있다.
그런 제주에 로켓배송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건 지난해 봄이었다. 한갓진 곳에 거대한 물류창고가 들어섰고, 쿠팡 로고가 그려진 화물차가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익일배송의 편리함은 지역 일상에서 화제가 되었지만 초기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말 그대로 총알같이 배송하느라 ‘쿠팡맨’들이 겪는 고충을 기사로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처음 로켓배송을 이용한 건 비대면 온라인 수업에 사용할 웹캠이 고장 났음을 뒤늦게 확인했던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통상 주말 포함 닷새 걸릴 배송을 쿠팡에선 만 하루면 해준다고 했다.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설마 싶었으나 다음날 저녁 어김없이 문 앞에 물건이 놓여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하루 만에, 그것도 주말에 배송 받으니 솔직히 편했다. 앱을 내려받아 정식으로 가입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무렵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직원과 가족·지인 등 152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환기구나 창문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노동자 400여명이 동시간대에 작업해온 사실 등도 보도되었다. 난 그 집단감염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판결을 지지했고, 가족·지인이 입은 피해를 기업 측이 보상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로켓배송은 요긴하게 이용했다. 올해 초 새벽배송하던 택배기사들의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했을 때도 이건 옳지 않다 싶었으나, 주문한 물건이 일주일 지나 도착한 일이 있은 후 슬며시 다시 쿠팡 앱을 열었다. 도서지역 거주자이니 이 부조리한 편리함을 좀 향유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며칠 전 쿠팡이 운영하는 물류센터에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여러 날 이어진 진화작업 도중 한 소방관이 목숨을 잃었다. 화재원인이 아직 공개된 건 아니지만, 냉난방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대의 선풍기를 멀티탭으로 연결시켜 풀가동한 것과 관계있으리란 기사들을 읽었다. 지난해 물류창고 집단감염과 올해 과로사한 쿠팡맨들이 뇌리를 스치며 가슴 깊숙이서 화가 치밀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악덕기업’에 날선 분노를 표출하며 스스로를 택배노동자 편에 선 자로 손쉽게 위치 짓는 나는 과연 정말 정의로운가. 로켓배송의 해악에 공분하면서도 배송 느린 지역에 산다며 그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던 것은 가진 자의 탈세에 공분하면서도 스스로는 중산층이 아니라며 세금 덜 낼 방안에 골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소극적 공모자 내지 방조자였을 내가 가질 일차적 감정은 정의감보단 부끄러움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쿠팡 불매운동에 동참함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국내 등기이사직을 사임한 창업자보다 당장 일거리가 줄어들 쿠팡맨들이 입을 타격이 오히려 더 크면 어쩌나 걱정되고, 유사한 노동악조건을 지닌 경쟁업체들에 힘을 실어주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종의 삶의 여건들로 새벽배송이 여전히 절실한 이들에 대해 불매를 인증한 경우가 항상 도덕적 우위를 점한다고도 보지 않는다. 다만 한 개인으로서, 적어도 스스로 부조리하다며 비판해온 편리함이라면 이를 내려놓음이 떳떳한 행동일 듯했다. 섬에 사는 사람인지라 도서지역의 물류 배송 상황이 개선되길 바라지만, 그걸 이유로 택배노동자의 삶을 갉아먹어온 과도한 서비스를 여기서‘도’ 누릴 수 있는 선택항에 더는 현혹되고 싶지 않았다. 정책입안자나 관련 분야 전문가가 아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일상에서 불편함 하나를 의지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감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회원을 탈퇴하고, 앱 삭제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