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을 타는 사람들읽음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입수한 ‘이 부회장 접견 기록’에 따르면, 이재용은 ‘국정농단 뇌물 사건’으로 재구속된 2021년 1월18일부터 6월9일까지 서울구치소에서 외부인을 총 183회 접견했는데, 이 중 변호인 접견이 166회였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씩 변호인을 만난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그런데 이재용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현재 취업이 제한된 상태이므로, 변호인을 통해 경영에 개입했다면 불법행위가 된다. 최근 경향신문의 단독보도(‘이재용, 하루 한 번꼴 변호인 접견 ‘옥중 경영’ 눈총’, 6월22일)에 따르면,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이 부회장 사건은 규모가 어마어마하기에 매일 만나 상의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했고, 삼성 측은 “현재 진행 중인 재판 준비를 위한 접견”이라며 “회사 경영활동과는 관련 없다”고 밝혔다.

이재용이 현재 재판받고 있는 자본시장법 위반과 분식회계 혐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를 흔드는 엄중한 경제범죄이다. 2001년 미국의 에너지회사였던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 재판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 패스토는 가석방 없이 10년 징역형을, 사장 스킬링은 24년4개월 징역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회사설립자이고 회장이었던 레이는 최대 45년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으나, 선고 전날 갑자기 사망했다. 인도 경제와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신뢰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던 IT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사 사티암의 회계부정 사건에서, 라주 회장도 2015년에 인도 특별법원으로부터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재용이 옥중 경영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재판 준비를 위해 매일 변호인을 접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사면이나 가석방과 이후 취업승인을 받더라도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용을 ‘백신 특사’나 ‘반도체 지휘관’으로 활용해야 한다면서 사면론을 띄워온 재계, 일부 정치인, 언론은 무지한 헛소리를 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에 장단을 맞춰 오던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은 어쩌란 말인가? 결국은 특정 개인에게 사법적 특혜를 주기 위해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현란한 줄타기로 국민을 속이려 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언론계, 정계, 재계, 종교계 일부까지 이런 광대짓에 합심하는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독립성이 생명인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전원회의도 줄 위에 올라탔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2013년 4월부터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등 삼성그룹 4개 계열사가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물량 100%를 수의계약 방식으로 몰아주면서 부당지원한 것으로 결론내리고 총 23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6월24일에 발표했다. 그러나 형사처벌과 관련해서는 삼성전자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을 고발 조치하는 데 그쳤다. 2018년 5월에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경쟁입찰 중단을 지시했음을 확인했음에도 공정위의 소환 조사에는 불응한 정 사장을 고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무슨 줄타기인가? 공정위 조사에 불응해도 고발당하지 않는다는 선례를 만들 요량은 아닐 것인데도 말이다.

역대급 일감몰아주기가 이재용 일가에게 안정적인 배당을 주는 핵심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했고, 2015년 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때 고평가된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을 합리화하는 빌미가 되었다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공정위 전원회의는 굳이 삼성웰스토리 일감몰아주기와 이재용 경영권 승계에 관련성은 없다고 방어막을 치고 나왔다. 백번 양보해도 경영권 승계와의 관련성을 명확히 입증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관련성이 없다는 무리수를 둔 이유는 무엇인가?

삼성웰스토리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공정위 전원회의는 5월26일과 6월2일 두 차례나 열렸고, 두 번째 전원회의 직후 공정위는 삼성 측의 동의의결 신청을 받아드리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제재 결정이 나오기까지 3주가 더 걸렸다. 고민 끝에 내린 줄타기 결정이었을까? 아니면 어떻게 현란한 줄타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보낸 것이었을까? 삼성이 아니고 이재용 승계와 현재 진행중인 재판이 없다면, 동일 사건에 대해 공정위 전원회의는 이런 줄타기를 시도했을까?

슬프게도 ‘비정상’과 ‘위선’은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공정’과 ‘정의’가 여전히 핵심어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삼성과 그 총수 일가를 둘러싼 ‘비정상’을 애써 외면하면서,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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