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대저, 계약과 규범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법언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작은 허물조차도 자신의 도덕적 결함으로 여겨 자책과 은둔을 미덕으로 삼은 우리 선조들의 선비 정신 및 (중략) 확립된 전통과 자유민주주의의 법리가 법의 엄격한 적용을 이끌게 한 이 재판의 바탕이 된 것임을 아울러 천명하며….” 이것은 1979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이 당시의 신민당 총재 김영삼에 대한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사건에서 내린 결정의 마지막 문장 중 일부다. 전부 인용하기엔 길어서 요지를 추리면 ‘법언(法諺)’ ‘선비 정신’ ‘영국 민주정 등의 전통’ ‘자유민주주의의 법리’가 결정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결정문 전체의 법적 논리는 정연하지만, 이 문장이 문제다. 법언은 그렇다 치고, 선비 정신과 타국의 전통과 자유민주주의의 법리가 왜 민주주의를 외친 야당의 총재를 내치는 법원 결정의 바탕이 되는지 이상하다. 부적절한 것이다. 이 군더더기가 부적절함을 넘어 부당했음은 역사적 사실이 말해준다. 김영삼은 자책하지도 은둔하지도 않고 군사독재에 계속 저항했다. 그해 10월 부마항쟁이 일어나더니 반민주적인 유신체제가 무너졌다. 그는 1993년에 대통령까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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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고 한다. 할 말이 있으면 판결문에 넣으면 된다. 그런데 판결로 말한다고 하여 어느 말이든 다 적절한 것은 아니다. 판결에서 하지 않아야 할 말도 있다. 그중 하나가 사건의 쟁점과 무관하거나 거리가 먼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이나 정치적 견해의 표출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할 일이 아닌 것이, 이런 군더더기는 판결의 신뢰성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나온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는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한 판단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왔다. “(위 주장은) 1인당 국민소득에서 대한민국이 일본국에 접근한 현재의 잣대로 당시 낙후된 후진국 지위에 있던 대한민국과 이미 경제대국에 진입한 일본국 사이에 이루어진 과거의 청구권협정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 당시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그런데 한강의 기적을 운위할 필요는 무엇이었을까. 문제의 외화가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는지 여부로 청구권협정에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었는지 아닌지를 가릴 일은 아니었을 터다.

‘강제징용 청구사건’ 판결문
정치성향으로 군더더기 의구심
판사가 법적 판단의 영역을
섣불리 넘어서려는 순간
에‘사법 신뢰의 추락’이 시작된다

대한민국 판결에 대한 일본의 중재절차 또는 국제사법재판소로의 회부 공세와 압박을 우려한다면서 이어진 다음 판단은 또 어떤가. “만약 국제재판소에서 패소하는 경우 (중략)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국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져 헌법상의 ‘안전보장’을 훼손하고 사법신뢰의 추락으로 헌법상의 ‘질서유지’를 침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논지의 정당성은 나중 문제고, 우선 이런 말을 판결에 넣는 것부터 적절하지 않다. 오죽하면 보수적 성향의 일간지 사설에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부족함을 탓하면서도 이 판결로 “판사가 외교를 한다”라고 했겠는가. 판사는 외교관도, 정치인도, 교사도 아니다.

이런 방론적 설시의 정체는 둘 중 하나다. 첫째는 감추다만 편향이다. 판결의 결론은 판결이유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결론에 이른 진정한 이유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어떤 판결에서는 결론 형성에 판사의 편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보통 때는 이유 뒤에 숨어 있던 이런 편향이 어떤 저울질 끝에 췌사(贅辭)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둘째는 과시욕이다. 좋게 말하면 판사가 가지는 세계관, 즉 사법철학의 교시다. 물론 상당수 교시가 그렇듯이 이는 어딘가에서 주워 읽은 토막 지식을 늘어놓는 것이거나 맥락 없고 주제넘은 주의주장이다. 문제는 이런 군더더기가 판결에 대한 공중의 신뢰를 낮춘다는 것이다. 엄밀한 법적 논증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 따위가 판결의 결론을 좌우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영국의 변호사 데이비드 패닉은 그의 저서 <판사들>에서 그 나라 대법관 보웬이 한 말을 인용한다. “사건의 판결에 불필요한 말을 하면 그것이 조만간 법관들에게 거북한 방식으로 되돌아와 추후의 사건에서 낭패를 겪는 원인이 된다.” 판사가 섣불리 법적 판단의 영역을 넘는 순간, 아닌 게 아니라 이번의 판결문 자체에 나오는 “사법 신뢰의 추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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