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라는 블랙박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매년 여름 보건복지부는 다음해 기준중위소득을 발표한다. 기준중위소득은 70여개 복지제도의 기준으로 직접적으로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급여(기준중위소득의 30%)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빈곤, 그리고 복지의 기준인 셈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기준중위소득은 지난 4년간 평균 2% 정도만 상승해 왔다. 같은 기간 최저임금의 평균 인상률이 14%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가운데 값이 평균 2%만 이동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른 중간값과 기준중위소득은 10% 이상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는 왜 벌어질까? 지난해에는 기준중위소득이 대폭 올라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정부, 정확하게 말하면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로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예측된다는 이유만으로 끈질기게 기준중위소득 인상을 반대했다. 현재 상황은 이런 결정이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다.

기준중위소득은 보건복지부의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가 결정한다. 나는 지난해까지 2년간 중생보위 산하 소위원회인 생계총괄위원회에 참석했지만 위원회 참여가 기준중위소득 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원회의 절반은 장관 및 고위공무원 등 당연직 위원이고, 정부 산하 연구기관과 각 부처의 추천을 받은 ‘전문가’가 나머지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른바 공익위원은 한두 명에 불과하다.

회의장의 문은 늘 굳게 닫혀 있다. 2013년에는 수급자들과 함께 회의장을 찾았다가 야멸차게 쫓겨난 기억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엔 시·도지사협의회와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에서 기준중위소득 인상 반대 의견을 내기 위해 소위원회에 참석했다. 가난한 시민의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지자체 수장 모임이 복지확대를 반대했다는 사실은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이 모든 회의는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회의 참여자들의 손에 쥐어주는 회의자료에는 ‘대외 인용 금지’가 항상 표기되어 있다. 요즘 흔한 영상중계는커녕 속기록 한 장 남기지 않는다.

올해는 모든 기관에서 4% 이상의 경제성장을 점친다. 소득격차에 따라 회복의 양상이 달라 복지확대의 필요성이 자명하지만, 과연 중생보위가 기준중위소득을 알아서 정상화할지는 모르겠다. 지금의 중생보위는 블랙박스다. 어떤 자료가 들어가도 블랙박스 안의 알 수 없는 회로를 거쳐 재정당국의 입맛에 맞는 결과가 도출된다.

그래서 나는 자리 높고 명망 있는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어야 살 수 있는 사람, 복지확대가 필요한 이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싸울 때 변화는 온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투쟁을 이어갈 것이니, 보건복지부는 먼저 한 가지 부조리를 바꾸면 좋겠다. 중생보위와 각 소위원회 회의장을 개방하고, 회의자료와 속기록을 공개하라. 블랙박스 위원회는 어떤 면에서도 민주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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