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이 능력이라는 오해읽음

편을 가를 때 내가 살던 지역은 이렇게 했다. 하늘과 땅이다~ 기울어도 모르기~ 이번엔 진짜~ 못 먹어도 소용없기~. 어느 한편으로 실력이 기울어 편을 잘못 먹어도 볼멘소리 없기다. 조금 다르게, 두 사람을 먼저 뽑아놓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방법도 있다. 이긴 쪽부터 선수를 지목해 데려간다. 먼저 선발되면 우쭐하고 늦게까지 남겨지면 머쓱하다. 그래도 잠깐이다. 어울려 놀다 보면 저마다 제 역할을 찾아서 힘을 모은다. 그런데 기껏 가위바위보를 이긴 사람이 시험성적에 따라 편을 짜면 어떻게 될까? 비난받을 것이다. 성적과 놀이 실력은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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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 실력과 학력도 마찬가지다. 학력(學歷)은 특정 교육기관이나 과정을 졸업하거나 이수한 이력일 뿐이다. 출신학교를 포함한 학력은 직무능력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다. 교육부가 차별금지법안에서 학력 삭제 의견을 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는데 의견서에서 교육부도 고백했다. “학력을 대신하여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지표의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이라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할 때 슬쩍 ‘학력’도 뺐는데, ‘기업의 인력운용 전반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경총의 반대 의견이 그랬나 보다.

학력이 직무능력과 비례하지 않음은 블라인드채용을 시행한 기업들에서도 확인된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학력 요건을 붙인 모집공고가 관행처럼 반복될 뿐이다. 고졸·초대졸·대졸의 직급을 구분하여 모집하거나 배치하는 경우도 많다. 서류전형에서 특정 대학 출신자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우대하기 위해 면접점수를 조작하는 사건도 있었다. 어떤 학교 어떤 학과를 거쳤는지의 이력을 ‘연줄’ 댈 능력으로 환산해주는 건 아닌가. 일에 적합한 사람을 가려서 뽑을 줄 모르는 기업의 무능력 탓에 학력이 능력이라는 오해는 더욱 굳어진다. 그리고 피해는 애꿎은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학력이 능력이라는 오해가 커지는 만큼 고졸자나 지방대 졸업생은 ‘능력 없는 사람’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치부된다. 취업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의 전 영역에서 낙인효과에 처하고 있다. 대학진학률이 70%에 이르는 독특한 문화를 가진 한국사회에서 대학 비진학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유는 원가족의 경제적 상황이다. 일찍 돈을 벌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고졸 학력으로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는 제한적이고 임금도 낮으며 직장에서도 경력을 쌓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불리한 처우는 손쉽게 ‘고졸’인 탓으로 돌려진다. 대졸자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졸 프리미엄’이라 불릴 만한 것이 희미해진 지는 오래고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졸업’ 정도가 되어야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지잡대’와 같은 말이 등장하는 이유다. 한국사회에서 학력은 신분이다.

직원을 몇 명 뽑을지, 어떤 방법으로 모집하고 어떤 기준으로 채용할지 정하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그러나 기업에 차별할 자유를 주지는 않는다. 1994년 제정된 고용정책기본법은 출신학교 및 학력 차별을 이미 금지하고 있다. 별다른 규제 조치가 없으니 기업이 스스로 바꾸지 않을 뿐이다. 차별받은 사람이 차별에 대항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한계도 있다. 어쨌거나, 기업이 여태껏 학력 차별을 없앨 방안을 찾지 못한 게으름이 차별금지법의 차별금지사유에 학력을 명시하지 못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을 데려갈 때, 사람대접하며 모시는 예의쯤은 갖출 줄 아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능력을 따지느라 전전긍긍하기보다 ‘기울어도’ ‘못 먹어도’ 함께하면서 서로 능력을 키울 줄 아는 사회라면 더욱 좋겠다. 놀이와 다르다고? 그래서 더욱 ‘하늘과 땅’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크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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