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집읽음

신예슬 음악평론가

연습실에서 친구들의 연주를 들었던 일은 꽤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친구들은 방 안에 틀어박혀 연습에 골몰하다가도 어느 순간 음악이 완성된 것 같다며,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 연주를 들려주곤 했다. 거기엔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연주와는 다른 힘이 있었다. 가까이서 음악을 듣다 보면 어디에서 친구의 호흡이 바뀌는지, 어떤 부분을 특히 더 세심히 표현하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음악가의 공간에서 연주를 듣는 일이 이렇게나 좋은데 꼭 정형화된 무대에 갈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럴 바엔 공연을 연습실에서 하자, 아예 누구네 집에서 해버리자, 농담 반 진담 반의 말들이 오가는 와중에 한 친구가 이미 ‘더하우스콘서트’라는 것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신예슬 음악평론가

더하우스콘서트는 음악가 박창수가 2002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시작해 중단 없이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공연 시리즈다. 주로 서양고전음악이 공연되지만 한국고전음악, 즉흥음악, 전자음악도 다뤄진다. 19년간 831회의 공연을 만들어오는 과정에서 이들의 집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연희동 자택을 떠나 광장동, 역삼동의 스튜디오를 거쳐 도곡동 율하우스로, 그리고 지금의 대학로 예술가의집까지. 서서히 터를 바꾸어갔지만, 그간 변하지 않은 것은 연주가와 관객이 같은 바닥에 마주 앉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음악을 듣는 일’은 음악인 가까이에 앉아 마룻바닥을 타고 울리는 진동을 느끼는 것까지 포함되며, 이들이 조성한 환경은 음악을 ‘체감’하는 것 또한 음악 경험의 중요한 축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그렇지만 공연환경이 전부는 아니다. 더하우스콘서트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 중 하나는 삶 속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공연을 전문 공연장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것처럼, 삶 가까이에서 예술과 함께하는 경험을 더 많이 쌓자는 것이다. 전국 각지 공연장의 문을 열고 더하우스콘서트의 공연 방식을 여러 지역으로 확장한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작전’, 한 달간 27개국 155개 도시에서 432개의 공연을 진행한 ‘원먼스 페스티벌’은 바로 그런 실천의 결과였다.

그간 더하우스콘서트가 흐름을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면, 최근엔 음악을 깊이 파고드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엔 ‘줄라이 페스티벌’이라는 이름 아래 7월 한 달간 베토벤 곡만을 연주하는 기획을 선보였다. 이들은 그 기조를 올해도 이어가, 이달에도 브람스라는 주제 아래 연주자 141명을 초대해 한 달간 공연을 열고 모든 과정을 유튜브로 중계하고 있다. 비록 수용인원이 대폭 축소되어 몸으로 전해지는 진동을 현장에서 경험할 순 없지만, 온라인으로나마 공연을 챙겨보며 이따금 이 플랫폼의 행보와 목표를 곰곰이 되돌아보곤 한다. 이들의 지향점이 인식의 깊은 곳에 자리한 가치의 문제인 만큼 변화는 빠르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치를 추구해온 기나긴 시간은 또 다른 소중한 영토를 형성해온 것 같다. 여기선 10대 음악가도, 해외를 떠돌며 활동하는 음악가도, 노령의 나이에 접어든 음악가도 모두 같은 마루에 모여 연주한다. 나는 이곳에서 성별, 나이, 학력 등 감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바깥의 기준보다는 음악과 음악가를 존중하는 태도가 중심에 놓여있는 것 같다고 느껴왔다. 대단한 개런티를 마련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가들이 이곳의 기획에 화답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태도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더하우스콘서트의 ‘집’은 한 개인이 사는 집을 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내게 음악인이 자라나고 안전히 머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음악인이 언제고 찾아올 수 있는 ‘음악가의 집’처럼 다가온다. 결코 쉽게 만들어질 수 없는 이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여전히 기쁜 마음으로, 그리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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