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올림픽과 일본의 모순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의 오프사이드] 도쿄 올림픽과 일본의 모순

물론 우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나면 경기에 몰입할 것이다. 스포츠는 여러 역사적 경로와 사회적 원인에 의하여 그 자체로 완전히 ‘순수한 세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경기가 열리는 순간만큼의 긴장과 밀도는 잠시나마 경기 외적인 요소를 잊게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그것이 스포츠의 모순되지 않는 양 측면이다. 온갖 이해와 욕망이 결합된 것이 올림픽이지만 개별 경기 하나에 충만되어 있는 공기 속으로는 외적 욕망이 쉽게 들어서지 못한다. <대부>나 <신세계> 같은 조폭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하지만 현실의 조폭을 선망하지 않듯이, 최고 수준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과 올림픽의 정치공학을 비판하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9년 만에 올림픽에 서는 양학선, 어수선했던 국내 리그의 여파를 뒤로하고 코트에 들어서는 김연경과 친구들, 첫 메달이 예상되는 근대5종의 전웅태, 배드민턴의 안세영(19)과 탁구의 신예빈(17), 마지막 날에 수없이 이름이 불리게 될 케냐 출신의 오주한 등이 그들에게 주어진 그들의 시간에 충실할 때, 우리 또한 우리의 자리에서 성원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도대체 올림픽이란 무엇인가. 비단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정상적 상태’라 할지라도, 올림픽은 무엇이며 왜 치르는가를 되물어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일 도쿄에서 열린 총회에서 기존의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에 ‘함께’(together)를 추가하여 올림픽 모토로 결정하였는데, 과연 이번 올림픽에서 ‘함께’가 실천될 수 있을까.

냉전체제와 개발도상국의 국가 경쟁력을 발전 엔진으로 삼던 20세기 올림픽에서 탈피하기 위해 ‘올림픽 어젠다 2020’ 등을 모색해온 IOC는 그러나 물리적으로 ‘함께’해서는 안 될, 심각한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밀어붙였다. IOC의 국제정치적 권위와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달리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게 외신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총회 연설에서 ‘선수들의 꿈’을 운운하였는데, 사태의 심각성과 강행 의도를 두루 고려하면, 오히려 그 꿈이 볼모가 되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김옥희 교수(한체대)가 분석하였다시피, 일본에서 스포츠는 근현대사 100여년의 국가적 집념과 이데올로기가 집중된 분야였다. 메이지유신 이후 ‘강건한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였고 1920년대 중반 이후 ‘신궁경기대회’와 그것을 확장한 ‘국민체육대회’는 ‘천황제 국가주의와 팔굉일우 군국주의’를 확산하는 기폭제였다. 1945년 이후 일본은, 존 다우어의 표현대로 ‘패배를 껴안고’ 미국 주도 냉전체제의 한 축이 되어 ‘패전하였으나 평화를 추구한다’는 식으로 태세전환을 추진한 바, 국민동원령의 엔진이 스포츠였고 1964년 도쿄 올림픽이었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도 쉽게 확인되는 어휘들, 즉 국민운동, 공중도덕 고양, 국토미화, 교통도덕 등의 각종 ‘국민체제’가 일제히 조직되어 수년에 걸쳐 올림픽운동을 전개하였다. 바로 그때, 그 현장을 참관했던 박정희 정권이 스포츠와 올림픽을 통한 국가주의 스포츠 시스템을 구상한 것도 공인된 사실이다.

두 번째의 올림픽을 눈앞에 둔 일본이 갈망하는 것 또한 바로 이 성공의 기억이다. 일찌감치 이번 올림픽의 슬로건을 ‘부흥’으로 결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일본은 스포츠와 올림픽을 국가 부흥의 엔진으로만 돌리고자 한다.

당장의 코로나 사태만을 거론하는 게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근원적 해결은 물론이고 이웃 나라들과의 정보 공개나 협조에 있어서도 오히려 공세적이었다. 일본은 늘 정교하게 문제를 회피하거나 야기해 왔다.

이번 올림픽 행사의 전체 주제는 ‘전진’이고 폐막식 주제는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다. 무엇을 공유한다는 말인가. ‘공유’가 미래적 가치와 그 실현을 위한 행동을 뜻한다면, 후쿠시마에서 코로나에 이르는 사태의 연속에서 일본은 ‘공유’의 가치를 외면해왔다. ‘욱일기’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올림픽 기간에 오히려 이 사태를 방치하거나 내심 더 키우는 듯하다. 개막식의 주제는 ‘감동으로 하나가 된다’인데, 문득 섬뜩하게 느껴진다. ‘욱일로 하나되어 부흥하고 전진’하는 올림픽을 갈망하는 듯하다. 그래서 우려하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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