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님은 오늘도 자고 있을까

이랑 뮤지션·작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한영애 ‘조율’ (작사·작곡 한돌)


찜질방 중에서도 가장 높은 온도의 방에서나 느낄 법한 무겁고 습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덕분에 집에서 작업실까지 가는 짧은 길에도 피로감이 상당하다. 7월 날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뜨거웠었나.

이랑 뮤지션·작가

이랑 뮤지션·작가

이렇게 찜질방같이 뜨거운 낮 시간에 야외에서 하루 종일 서 있는 직업도 많다. 최근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면허시험장을 들락거리며 자주 만나는 시험장 감독관도 바로 그런 직업 중 하나다. 그들은 형광색 안전조끼를 입고, 우산을 들고 콘크리트 열기가 이글거리는 운전면허 기능시험장 이곳저곳에 서 있다. 한낮의 열기에 한껏 뜨거워진 시험차량에 탑승하면 그 온도에 깜짝 놀란다. 사이드 미러를 잘 보기 위해 운전석 양쪽 창문을 끝까지 내리면 차 안팎으로 후끈후끈한 공기가 휘몰아친다. 긴장감 때문에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브레이크를 몇 번 밟으며 앞으로 나가다보면 온몸은 땀으로 범벅, 다음에 마주칠 코스를 앞두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내뱉고 있는 마스크 안도 뜨거운 숨으로 꽉 찬다. 감독관들은 코스 중간에 불합격된 시험차량을 발견하면 성큼성큼 걸어가 낙심한 운전자를 끌어내린(?) 뒤 시험차를 대신 운전해 출발지점에 다시 가져다 둔다. (나는 벌써 두 번이나 끌어내려졌다.) 몇 분 운전하지도 못하고 코스 중간에 불합격 통지를 받고 나오는 짧은 길에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오전부터 계속 시험장에 서 있는 감독관들은 얼마나 고될까.

내가 면허를 따려는 이유는 중대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반려동물과 함께 병원에 자주 가야 해서이다. 매주 동물병원에 갈 때마다 택시 타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스스로 운전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같은 이유는 아니겠지만, 코로나19 시국에 운전면허를 따려는 사람들이 대폭 늘었다고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이나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게 큰 이유로 작용한 것 같다. 이렇게 면허 응시자나 배달 음식 쓰레기처럼, 코로나19 시국에 늘어나는 것도 많지만 줄어드는 것도 엄청나게 많다.

최근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상향되면서 동료 음악가들의 공연 취소 소식이 연달아 들려온다. 공들여 만든 포스터 위에 거칠게 쓰인 ‘취소/CANCELED’라는 글자와 환불 방법을 상세히 안내하는 내용을 보고 있으면 작년 3월, 나도 처음으로 공연 포스터 위에 눈물 흘리는 그림과 함께 ‘취소’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포스터 위에 ‘매진!’이라는 글씨를 즐겁게 쓰던 기억은 너무 오래돼 역사 속 한 장면 같다. 공연이라는 일 자체가 너무 큰 리스크가 된 분위기다. 엊그제 ‘공연음악 생존을 위한 연대모임’에서 메일 한 통이 왔다.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려던 ‘마포구의 음악생태계를 묻는다’ 포럼을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소식이었다.

2019년 가을, 한국을 방문한 일본 뮤지션 오리사카 유타와 한강에 마주앉아 한영애의 ‘조율’을 함께 노래하는 영상을 찍었다. 코로나19 위기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지만 여러 다른 위기들은 여전히 많았고,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랫말에 나오는 ‘하늘님’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땅, 숨 쉬는 공기, 올려다보면 보이는 하늘빛, 바람과 물… 도시 속에서도 틈틈이 보이는 존재들을 떠올리며 불렀다. 하지만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곧 전화로만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최근 오리사카 유타와 전화로 한국과 일본의 공연계 소식을 나누었다. 나는 공연음악 생존을 위한 연대모임이 마포구청에 보내는 공개질의서에 연대서명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그는 거리 두기 없이 진행된 야외 페스티벌에 참가해 공연자로서의 만족감과 감염병의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들의 상황을 조율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일까.

위기라는 단어에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많은 위기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세상. 이번 달에 태어나는 친구의 아기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친구에게 선뜻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도 될지, 금방 보러가겠다는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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