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생각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공동대표

성경에서 ‘이름 짓기’는 창조 행위의 일부로 신의 영역에 속한다. 하느님은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하느님은 이 ‘이름 짓기’에 사람을 초대한다. 하느님이 동물을 창조하면 사람은 그 이름을 지었다. 이름 짓기는 신성한 일이다. ‘모세’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라는 뜻의 이름이다. 이름에 걸맞게 모세는 후일 자기 민족을 이집트 제국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출애굽’을 이끈 모세는 이름대로 살았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공동대표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공동대표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걸러냈다며 ‘처리수’라 부른다. 하지만 이 물은 처리되었어도 탄소14와 삼중수소, 스트론튬90과 세슘137 등이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오염수다. 걸러낸 것은 방사성 물질들이 아니라 물질들의 이름뿐이다.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않다. 지난 9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위험 요소가 해소되지 않은 ‘신한울 1호기’ 운영을 조건부 승인했다. 가동이 지체되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이유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보다 경제를 중시하는 원자력‘경제’위원회 또는 원자력‘진흥’위원회다.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며 탈핵을 선언한 정부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들고나왔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빌미로 핵산업계와 학계도 SMR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이름만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무대왕과학연구소’의 주요 연구 과제도 SMR이다. 그러나 SMR은 크기만 줄어든 핵발전소다. SMR은 여전히 위험하고 거기서 나오는 고준위핵폐기물도 인간이 감당할 수 없다. 이름이 진실을 왜곡한다.

기후위기가 현실이 되면서 ‘2050 탄소중립’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들며 부산한 정부의 태도에서 진정성과 절박함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2050년’을 말할 때는 결연하나 ‘지금’은 한가해 보인다. ‘아직’ 29년이나 남았다는 듯 여유롭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계획을 마련한다면서, 지금의 소비와 탄소배출은 아무 연관도 없는 듯 소비 진작에 여념이 없다. 정부가 탄소중립에 기술 관료적 관점으로 일관하니 기후 위기에 책임이 큰 대기업들이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해결사를 자처하며 나선다. 정부는 기업의 연구·개발 지원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화답한다. 안에서는 저탄소 경제를 들먹여도 밖에서는 틈만 나면 석탄발전소 같은 고탄소 사업을 기웃거린다. 탄소중립을 또 다른 도약의 계기로 삼자는 공허한 말만 무성할 뿐,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우리의 삶과 경제에 관한 겸허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2050 탄소중립’은 자본과 기술의 문제로 변했다. 이름이 오염된다.

재생에너지는 지역 에너지라야
또한 자연·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핵발전은 ‘이름의 횡포’
자본의 삿된 짓 발 못 붙이려면
올바른 이름이 문제 해결 첫걸음

정부는 그동안 발의된 기후위기 법안들을 종합해 ‘탄소중립 녹색성장법’(가칭)을 내놓았다. 탄소배출 증가가 필연적인 물질적 성장은 탄소 감축을 뜻하는 녹색일 수 없다. 녹색성장으로는 탄소중립은커녕 적기에 필요한 탄소 감축도 할 수 없다. 이 법은 탄소중립은 추진해보겠지만 성장은 꼭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30년 미래의 탄소중립보다는 현재의 성장이 급하다는 의중이 보인다. 기후위기는 성장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성장해서 일어났다는 진실을 지우려 한다. 이름이 일을 그르친다.

‘재생가능에너지’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태양광·풍력발전이 산으로 논으로 바다로 달려간다. 지난 2월, 정부는 전남 신안 앞바다에 정부와 민간의 공동 참여로 총 48조5000억원을 투입하여 설비용량 8.2GW 규모의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곳 바다에 설치되어 재생가능에너지를 대량 생산할 수많은 해상풍력발전기는 주변의 해양생태계를 재생 불가능하게 훼손할 것이다. 생산한 전기를 대도시로 보내기 위한 송전탑은 아름다운 자연과 소중한 삶을 재생 불가능하게 망가뜨릴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는 무엇보다 지역 에너지라야 한다.

그래서 ‘해’는 모든 곳을 비추고 ‘바람’은 모든 곳에 분다. 서울에도 해가 뜨고 바람이 분다. ‘재생가능’한 에너지는 에너지만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도 함께 살린다.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는 에너지다. 핵발전이 재생가능에너지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이름이 횡포를 부린다.

이름으로 세상이 뒤죽박죽 혼란스럽다. 공자가 정치의 최우선 과제로 정명(正名), ‘이름을 바로잡는 일’을 꼽은 연유다. ‘이름(名)’에 ‘내용(實)’이 부합하지 않으면 부합하게 만들고 ‘내용’에 부합한 ‘이름’을 지어서 ‘명실상부’(名實相符)하게 될 때 기술을 앞세운 자본의 삿된 짓이 발붙이지 못한다. 그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해질 터다. 올바른 이름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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