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중요한 건 ‘사실 확인’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포털서비스를 통해 뉴스를 보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기사의 속도가 강조되고 있다. 속도가 중요해지다 보니 취재 없는 기사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개인 SNS 메시지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 자료를 그대로 기사화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언론이 갈등과 적대를 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상업적 수익을 위해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특히 ‘젠더 갈등’ 주제가 그러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5월 GS25 포스터를 둘러싼 언론 보도가 주요 정보원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하면서 커뮤니티에 게시된 게시물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쳤으며 사실 확인이나 추가 취재 등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들어 언론이 해당 논란을 특정한 방향으로 틀을 지우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언론이 커뮤니티 게시물이나 SNS 메시지 내용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언론이 미처 살피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 현실이 온라인 공간에서 먼저 알려져 언론에 보도되면서 역의제설정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이 기사화되는 경우, 더 나아가 사실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주목만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기사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일 특정 남성 중심 커뮤니티의 게시글 전달 기사가 대표적 사례이다. 뉴스1에서 먼저 보도한 이 사례에서, ‘핫팬츠녀’라고 여성을 명명하고 대중교통 내에서 남성들이 성추행 가해자로 의심을 받을 것 같아 여성의 문제를 외면했다는 것을 부각했다. 이 보도를 필두로 여러 언론들이 게시물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포털서비스를 통해 이 기사가 유통되면서 성폭력 범죄의 문제가 문제를 제기한 여성에게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성폭력 문제의 해결 방법을 젠더 권력에 대한 비판과 구조적 전환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지 않으면 된다고 제안하는 내용들이 댓글로 등장하여 온라인 공론장의 주요 의견처럼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사건의 내용은 게시물의 내용과는 달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사회적 논의를 위한 공론장을 형성하기보다는 특정한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노나 증오를 유발하기 좋은 사건들을 찾아내 자극적인 제목을 통해 기사화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문제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의 관련 사건이 실존했다고 하더라도 근거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와 같은 게시물은 십수년간 떠돌고 있는데, 폐지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의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은 비추천을 받아 삭제되는 등 동조편향이 쉽게 일어나는 곳이 온라인 커뮤니티이다. 언론 보도나 SNS 게시물에 대한 팩트체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같은 생각이 강조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견들이 닿기 어렵다. 이러한 공간에서 생성되는 주장들을 사실 확인 없이 공론장에 유통하게 하는 역할을 언론이 담당하고 더 나아가 검증되지 않은 주장들의 사실성을 보증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취재원으로 삼는 관행이 문제가 된다.

이러한 기사들의 양산이 오로지 미디어 환경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최근 몇몇 언론사들이 성평등과 관련하여 취재와 숙고를 통해 양질의 기획 기사를 만들어내고 있고, 기후위기나 노동문제 등 전통적으로 조회수가 높지 않은 영역에서도 공적 논의를 위한 의제를 설정하고 기초 자료를 충실하게 제공하는 보도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회수를 목적으로 사실 확인도 기사 가치에 대한 평가도 없이 기사를 양산하는 것은 해당 언론사의 선택이고 이는 또한 공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보도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 확인이라는 기본 책무부터 충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Today`s HOT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황폐해진 칸 유니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