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성은 여성가족부 전문가읽음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의 낯선 사이]세 남성은 여성가족부 전문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하태경, 유승민 대선 후보(이하 유승민 전 의원)가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내놓은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이들의 주장이 무지에서 온 확신인지, 남성 표를 의식한 선거 전략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 문제지만, 그나마 후자는 정치인으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수술실의 CCTV가 의사의 집중력을 방해한다” “통일부도 없애야 한다”는 논리가 얼마나 표로 연결될지는 모르겠다.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나는 여가부 폐지 공약도 득표 전략으로서 효용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표를 잃을 수 있고, 사실 대다수 남성들은 목소리만 클 뿐 ‘여성 문제’에 관심이 없다. 다시 말해 오직 여가부 폐지 공약만으로 국민의힘에 투표할 남성은 많지 않다고 본다. 역설적으로 그 정도로 젠더 문제에 관심이 있는 남성이 많다면, ‘다행이다’.

남성의 고통은 실업 등 남성 간의 계급 문제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급 갈등을 익숙하고 편리한 젠더 문제로 표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징병 대상인 흙수저 남성’과 ‘시험 성적으로 취업한 여성’의 대립 구도를 만드는 식이다. ‘남성이 군대 있을 때 여성은 취업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당장 국방부 홈페이지를 보라. 이미 수십년 전부터 국방부의 병역정책은 취업 독려와 지원으로 이동한 지 오래다.

일부 여성주의자조차 이러한 현상을 ‘젠더 갈등’이라고 하는데, 성차별을 왜 젠더 갈등으로 변질시키는가.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인과의 갈등 때문인가. 한국인 이민자를 소재로 한 캐나다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의 첫 회 방송은 ‘게이 세일’인데, 편의점 주인인 미스터 김은 게이축제 주간을 맞아 동성애자에게 15% 할인 판매를 한다. 그러자 다른 손님이 이를 “이성애자 차별”이라고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성애자든 아니든, 특정 고객(예를 들면, 수험생)에게 일시 세일을 하는 것이 다른 고객에 대한 차별인가? 지금 한국 사회도 이런 식의 제로섬 사고방식이 만연해있다. 심각한 사회적 문해력 문제다.

젠더와 그에 따른 사회문제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게 여가부 폐지론
젠더 모르면서 전문가 행세 마라
사회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새로운 주장은 아니지만, 유승민 전 의원의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가 있으니, 각 부처마다 여성 관련 담당관을 두면 된다”는 발언은 중요한 이슈다(경향신문 7월26일자 홍성수 칼럼 ‘여가부 폐지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없다’ 참조). 내가 유 전 의원의 의견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나는 그와 입장이 같다. 맞는 말이다. 또한 한국을 포함해 여러 국가에서 여성정책과 관련하여 항상 ‘결론’으로 도출되는 바이다.

모든 정책에는 특정한 관점이 반영되어 있지만, 굳이 구분을 하자면 통일부와 여가부는 업무 대상이 따로 있기보다는 ‘가치관 부서’다. 그러므로 그의 말대로 여성주의적 행정안전부, 여성주의적 법무부, 여성주의적 중소벤처기업부 등으로 젠더를 고려한 방식으로 업무가 배당되어야지, 여가부가 따로 있는 것은 난센스다.

학문 분야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수많은 대학 중에서 여성학이 별개로 설치된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신 기존의 학과에 페미니스트 교원들이 포진해 있다. 여성주의 경제학, 여성주의 영장류학, 여성주의 의학, 여성주의 신학, 여성주의 심리학, 여성주의 핵물리학…. 생소할 것이 없다. 한국에 번역된 영미권의 여성학 도서들은 다 이들이 쓴 것이다.

요약하면, 여성학이나 여가부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게토화되기 쉬우며 다른 부처의 협조를 얻기도 어렵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100만명이 넘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모두 여성을 포함해 장애인, 성소수자, 건강 약자, 빈민 등 사회적 약자까지 즉 실제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젠더를 고려한 이른바 성인지적(性認知的) 정책을 수행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성폭력 가해자 중 공무원이 얼마나 많은지는 차치하더라도, 이는 불가능하다. 영원히 불가능하다.

젠더 모순은 계급이나 인종보다 오래된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이다. 여성주의는 지향하는 것이지, 실현되는 그날은 없다. 여성주의자도 24시간 여성주의자로 사는 이들은 없다. 여성주의도 가부장제의 공기 안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 이는 여성주의 자체의 특성에 기인한다. 여성주의는 ‘원칙이 없다’. 고도의 맥락적 사유다. 여성주의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사유가 아니다.

여성주의는 여성의 눈으로 세상으로 보자고 제안하지만, 그 ‘여성’이 누구인가부터 논쟁적이다. 여성주의의 지적 수월성은 여기에 있다. 여성들 간 나이, 계급, 지역 등의 수많은 차이로 인해 여성이라는 같음과 다름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원칙을 만들고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오랜 연구자들도 사안마다 여성주의적 대처를 하기 어렵다.

그런데 무슨 방도로 18개 부처 공무원들이 어느 세월에 성인지적 관점을 갖겠는가. 지구가 멸망한 후에도 불가능한 일이다. 여성가족부는 임시방편으로 그러나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부서다. 여가부 폐지는 이처럼 젠더와 젠더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사회문제 전반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여성이 겪는 성차별은 직장이든 가정이든 모두 아는 이들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차별을 시정하는 과정에서 인간관계를 잃고, 인생을 걸고 투쟁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알면서 참는 이유다. 여성들에겐 회사 상사나 구타 남편이 대통령보다 힘이 세다.

여가부가 사용하는 예산은 전체 정부 예산의 0.2%. 이 돈이 여가부가 하는 일에 비해 그렇게 많은 돈인가? 여가부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의 임금도 다른 부처보다 훨씬 적다. 한 예로 ‘NGO 경력 10년, 별정직 공무원 5년, 외국 명문대 교수 경력을 가진 50세 여성’이 월 3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고 일한 경우도 있다. 조직이 작으니 직급이 섬세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여가부의 주된 업무는 아동, 청소년, 이주여성 등 사회적 약자 지원과 보호이다. 성폭력, 가정폭력은 물론 디지털성폭력의 경우는 업무 자체가 피해일 정도로 고통스럽다. 이렇게 적은 예산으로 이토록 많은 업무를 하는 부처가 있는가.

여가부 폐지 논란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또 있다. 여가부는 국민 전체를 상대로 하는 부처가 아니라 국민의 반만 관련된 부처라는 인식이다. 여전히 여성은 인간(남성)의 반(半)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실제 모 학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젠더를 주제로 쓴 논문이 교수 업적 평가에서 50%밖에 반영되지 않아 논문을 제출한 교수가 항의했더니, 심사위원인 남성 교수가 여성은 인구의 반이니 100점 만점에 50점만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장애 관련 논문은 인구의 15%이므로 15점이고, 농업 논문은 농촌 인구가 현재 300만명이므로 전체 인구 5100만명 중 그만큼의 비율만 논문 점수에 반영되어야 하는가.

정치인이 가장 많이 하는 말, “국민을 위해 이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진부하지만 맞는 말이다. 대신 전제가 있다. 국민을 위하려면, 국민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기 자신도 국민에 포함시켜야 한다.

정치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출마하려는 이들은 스스로 나는 어떤 국민인가를 질문했으면 한다. 자기 삶의 경험을 국민 전체로 보편화해서는 안 된다. 몇몇 정치인을 제외하곤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역시 진부한 말이지만,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남성 정치인은 일주일만이라도 여성으로 살아보았으면 한다. 택시기사 경험처럼 말이다. 얼마 전, 나는 일주일간 매일 20장, 30장씩 원고 마감을 해야 했다. 내용도 매체도 중구난방, 고달프고 부끄러운 인생이었지만 일단 마감을 지켜야 해서 제때 메일 처리를 하지 못했다. 한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일할 수가 있냐며 과장이기를 바란다고 했고, 한 사람은 내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 후자는 나처럼 살아온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남성이었지만 경험에 따라 이렇게 반응이 다르다.

젠더를 모르면서 젠더 전문가 행세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젠더, 아니 사회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여가부 폐지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 내가 만일 국방부 폐지를 주장하면 타당성을 떠나 나의 전문성부터 취조당할 것이다.

그나마 위안은 현 여성가족부 장관이 전문성과 성실성을 모두 겸비한 능력 있는 국무위원이라는 사실이다. 그전에는 여가부 장관조차 여성의식, 아니 직업의식도 없는 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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