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이 수학은 아니지만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의 아이러니] 재판이 수학은 아니지만

재판은 수학이 아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중간쯤에 있다. 증거는 자주 오염된다. 디지털 증거처럼 고도의 정확성이 확보되는 경우도 있지만, 증언과 같이 취약한 증거도 있다. 이때 어떤 증거를 믿느냐는 판사의 주관에 달려 있다. 증거의 취사선택에 관한 세세한 원칙이 있지만 회색 지대의 존재는 피할 수 없다. 오판의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 변호사

첨예하게 대립하는 재판은 언론의 보도만 살펴서는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기사만 보고도 무죄가 짐작되는 경우라면 기소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소되었으나 다투고 있는 경우라면 대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솔직히 김경수 전 지사의 사건은 보도만 훑어봐도 유죄로 여겨졌다. 불리한 증언들, 여러 디지털 증거, 드루킹과 피고인의 많은 의사소통은 결정적으로 보였다. 많은 이의 예상대로 이 사건은 모든 심급에서 유죄가 되었다.

그러나 재판은 수학이 아니다. 오판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때 피고인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것은 진실이든 아니든 피고인의 고유한 권리다. 그런데 주변인들이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판결을 부정하는 게 온당한가. 심정은 이해된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고백은 인간적이다. 그렇지만 신뢰할 만한 고백인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피고인이 기소된 범죄는 진실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범죄다. 지지하는 후보를 어떻게든 당선시키고 싶은 열망에 누구든 사로잡힐 수 있다. 착한 사람은 선거를 도와주겠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이 얼마나 모순에 찬 존재인지 정녕 모르는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도 서로 앞다투어 판결을 부정한다. 민주당 강령은 ‘서민과 중산층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는 이 강령을 충실히 따르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상황이 수시로 벌어진다. 이재용씨를 못 풀어줘서 안달이 난 것을 보라. 그러니 기득권 보수정당이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기껏해야 자유주의 정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정당인 건 맞는가. 진영논리에 빠져 법치주의를 이토록 모욕하는 정당이 과연 자유주의 정당인가. 어떤 이처럼 파시즘을 거론하는 것은 너무 멀리 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을 애지중지하고 민주당이 애지중지하는 어느 방송인이 대법관에게 쌍욕을 하는 것을 보면, 법치주의를 옆집 강아지처럼 여기는 것은 분명하다. 대법관이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쌍욕을 해야 할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그는 불편한 감정에 확증편향을 더한 후 교묘한 궤변을 동원할 따름이다. 그들은 정말로 이 재판의 결론이 틀렸다고 믿는 것일까. 당사자인 피고인은 어떨지 모르나, 민주당 지도자들이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경선 승리를 위해 정치적 수사를 읊었을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더 위험하다.

피고인의 태도도 섬세하게 따져볼 수 있다. 유죄가 맞지만 그야말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 스스로 기억을 왜곡하며 유리한 사실만 받아들이는 경우, 법에는 어긋날지 모르나 정치적·역사적 정당성을 기반으로 마키아벨리적인 태도를 선택한 경우, 스스로에게 속은 경우 그리고 정말 무고한 경우가 다 가능하다. 만일 죄가 없다면, 깊은 위로를 보낸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추론한다. 정치적으로 매우 유리한 지형을 딛고 선 채, 피고인 지위에서 쓸 수 있는 온갖 카드를 쓰고도 피하지 못한 결론이다.

확증편향은 무섭다. 이제 누구나 이 용어를 알지만, 자신이 아닌 남에게서만 그것을 발견한다. 엄정한 자기 성찰과 노력이 없으면, 매우 지성적인 사람도 자주 이 그물에 걸려든다. 자신의 의견과 세계관의 손톱을 뽑으며 스스로 고문하겠다는 정도의 각오가 있어야 겨우 도망칠 수 있다.

이 재판을 둘러싼 풍경은 예외적인 성취를 이루고 있는 대단한 나라의 초라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존경받던 민주화운동 그룹은 지치지 않고 밑바닥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물러서는 것이 이제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점을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야당의 집권을 차마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강한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조차 오죽하면 그러한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을까. 이래저래 무덥고 뒤숭숭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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