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골든타임’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

시작은 손가락이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양 손가락이 퉁퉁 부어 주먹을 쥘 수가 없었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통증은 슬금슬금 온몸의 관절로 퍼졌다. 온갖 병원을 다녔지만, 속 시원한 원인과 처방을 듣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갈 즈음, 지금의 주치의를 만나 알게 되었다. 나는 갱년기 관절통을 제대로 맞았다. 10년 전쯤 직장 선배가 경고했던 말이 떠올랐다. “경아씨, 지금부터 관리하지 않으면 여자들은 갱년기 전후로 무너져. 명심해!” 50대인 지금 내 몸은 40대 시간의 결과다. 인생 이모작, 노후 준비 관련 숱한 강의와 글을 써 왔던 내가 갱년기 통증 앞에서 얼마나 모순된 사람인지 직면했다.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

중년의 몸은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특히 갱년기로 통칭되는 중년 여성의 몸은 더 예민하고 복잡하다. 갱년기는 여성 호르몬 감소로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다시 안정화되는 약 10년의 기간을 말하며, 100인 100색일 정도로 사람마다 다양한 증상으로 발현된다고 한다. 불면증, 안면홍조, 열감 정도로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갱년기 전후 여성의 몸이 얼마나 변화되는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둔감했다.

아파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흔히 노후 준비 하면 주택, 연금, 노후자금, 일자리 등 재무적 요소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건강, 인간관계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가 얼마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절감했다. 게다가 이것은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가능하다.

김헌경 일본 도쿄 건강장수의료센터 연구부장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노년의 삶은 연금과 근력이 결정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부동산과 영양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다. 또한 일본은 고령자들에게 흔한 낙상, 요실금, 보행 장애, 근감소증, 허약 등을 묶어 5대 노년증후군이라 부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년 근력 강화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해 오래전부터 일본 전역에 다양한 방법으로 보급·실천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의 건강수명은 우리나라보다 1.8년 이상 높다.

중년기는 노년 건강의 질을 좌우할 골든타임이다. 하지만 국내 중장년층 프로그램은 일자리 관련 취업·창업, 재무 관련 교육이 대다수다.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의무적으로 하듯, 개인별 맞춤형 후속 조치도 필요하지 않을까? 전국의 모든 보건소와 중장년 시설에 근육, 혈관, 갱년기 교육 등을 필수 교과목으로 정하고 실천하도록 하면 좋겠다.

아파보니 오랫동안 질환을 가지고 살아온 친구들이 다시 보였다. “아프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그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였겠구나 싶다. 어찌 보면 노년은 크고 작은 통증과 공존하는 시기다. 그런 의미에서 아픈 몸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고, 건강한 몸에 대한 강박도 조금씩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늘 새로운 길을 걸어왔던 50대는 일상에서 스스로 재밋거리를 만들고, 서로 돌보고 의지하며 유쾌한 노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리고 때로는 가족, 멀리 사는 형제자매보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살뜰하게 챙겨준 가까운 친구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게 나의 든든한 노후 밑천이다. 그래서 나는 내 노년이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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