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오수경 자유기고가

젠더 관점에서 보자면 2020 도쿄 올림픽은 ‘성평등 올림픽’으로 기억될 만하다. 우선,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트랜스젠더 여성이 참가했다. 뉴질랜드 역도 국가대표로 올림픽 무대에 서는 로렐 허버드(43)는 역대 최고령 역도 선수로도 기록될 예정이라고 한다. 불공정 논란 등 그가 출전하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뉴질랜드 정부가 그의 출전을 적극 지지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독일 여자 체조 대표팀 선수들은 기존의 수영복과 유사한 레오타드(leotard) 유니폼 대신 상ㆍ하의가 붙어있고 발목까지 다리를 덮는 유니타드(uni-leotard)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노출이 많아 성적 대상화되기 쉬운 유니폼 대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안전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는 것을 자율적으로 선택한 결과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무려 2021년이지만, 아직도 여자 선수들은 자신이 입을 유니폼조차도 자율적으로 선택하기 어렵다. 노르웨이 여자 비치핸드볼 대표팀 선수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들은 지난 6월 유럽 비치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 비키니 대신 반바지를 입고 출전했다가 유럽 핸드볼연맹으로부터 선수 한 명당 150유로(약 20만원)씩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여자 선수들이 상의는 스포츠 브라, 하의는 옆면이 10cm 넘게 다리를 덮지 않는 비키니를 입어야 한다는 국제 핸드볼연맹 규정을 어긴 게 벌금을 부과한 이유였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협회는 ‘벌금 낼 각오’로 반바지 유니폼을 입고 출전해 이런 규정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보여주었다.

이런 긍정적 변화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난데없는 ‘숏컷’ 논란으로 뜨겁다. 여자 양궁 국가대표 선수 안산의 머리 모양이 짧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일부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은 선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 내용까지 문제 삼으며 양궁협회에 ‘안산 선수의 사과와 금메달 반납’을 요구했다. 세상에! 머리카락이 얇고 곱슬이 심해 숏컷을 하고 싶어도 못해서 슬픈 나로서는 그게 그렇게 불온하고 위협적인 ‘페미 상징’이었는지 몰랐고, 무수한 숏컷 중 ‘페미 숏컷’을 감별해내는 그들의 능력에 놀랐다. 손가락 모양 논란에 이어 이제는 머리 모양까지 논란이 되다니. ‘이게 성차별이다!’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남성들이야말로 ‘어둠의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그들 대부분의 머리 모양이 ‘페미’ 상징인 숏컷일 가능성이 크므로 이참에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면 어떨까? 그게 싫다면 머리를 길러 ‘탈페미’ 할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게 성차별주의자의 길보다는 낫지 않은가!

‘숏컷 논란’처럼 여전히 차별과 혐오의 벽을 세우는 걸 보고 있으려니 1988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울려 퍼진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자신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땀 한 방울도 낭비하지 않고, 국가를 넘어선 우정을 나누며 깨끗한 승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상징하는 표현 아닐까? 그런 정신을 바탕으로 성차별적 관습을 넘어서기 위해 선수들과 세계 시민은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런 흐름을 응원하기는커녕 찬물을 끼얹는 이 누구인가! 손에 손을 잡고 벽을 넘어서는 것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제발 상식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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