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이씨읽음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작년 4월부터 금요일 밤마다 서울역 노숙인 광장으로 아우트리치를 나간다. 여러 구역을 차례차례 돌며 선배 활동가들에게 사람 만나기를 배웠고, 5월부터는 내 담당 구역이 정해져 두세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맡고 있다. 예순 후반의 이씨는 처음부터 내 담당 구역 내 지하도에서 십여명의 사람들과 살고 있었다. 마침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던 시기여서 그에게도 신청하셨는지부터 물었더니 “집식구들이 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하며 고개를 돌렸다. ‘가구당 신청’ 규정에 대해 ‘홈리스행동’ 등 인권단체들이 끈질기게 문제제기했지만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는 말수가 적고, 임시주거지원 등 노숙인 복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사정이 있으려니 싶었고, 구체적으로 묻기에는 아직 친하지 않았다. 그가 거처를 옮기지 않아 금요일마다 그 지하도 그 자리에서 만나다보니, 좀 떨어져서도 눈이 마주치면 서로 손짓도 미소도 나누게 되었다. 그래도 정작 마주앉으면 별 말은 없이 고맙다는 말만 했다. 길지 않은 기간 사이에 낯빛이 검어지고 몸이 야위어가는 것이 또렷했고, 치아가 하나도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치아는 남들 앞에 감출 수 없는 빈곤의 표시여서 우선 못 본 체한다. 때로 다 무너진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외람되지만 그 포기의 경지가 놀랍다. 우리가 그곳에 가는 시간이 밤 9시30분경이어서 그는 대체로 잘 준비를 하고 누워 있었다. 아직 잠이 안 들었을 때면 작은 인기척에도 돌아보며 일어나려 했고 “아이고, 주무시는데 깨웠나보네요. 일어나지 마셔요”하며 후원물품을 곁에 놓고 오곤 했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어느 날 그 지하도가 싹 비워졌다. 중구청이 민원과 코로나19 방역과 물청소를 이유로 그곳 사람들을 쫓아냈다. 이씨의 행방도 알지 못하다가 다행히 곧 만났다. 그는 그 지하도 출구 벽과 도로 사이 좁은 공간에 거처를 정했다. 낮이고 밤이고 차 소리가 많은 자리인데, 사람들이 적어 오히려 좋다고 했다. 그곳에는 늘 서너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가끔 복지 이야기를 꺼내도 여전히 마다했다.

그러다가 7월 들어 그의 표정이 역력히 달라졌다. 추석 전 나온다는 재난지원금이 이번에는 개인별인 게 확실하냐고 물어, 뉴스 보도가 그렇다며 “이번에야말로 국가한테서 뭘 좀 받아보자”며 같이 좋아했다. 2차 백신을 마저 맞고 나면 임시주거지원도 신청해보겠다고 했다. 9일(금) 만났을 땐 다시 심난해했다. 주거지원신청을 위해 희망지원센터 상담을 받아보니, 부인이 실종신고를 했더란다. “그걸 해결하려면 집을 한번 다녀와야 하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게다가 그의 하늘색 캐리어에는 “12일까지 폐기물을 자진수거하지 않으면 강제수거하겠다”는 중구청 청소행정과의 9일발 명령장이 붙어 있었다. “내 살림살이가 어떻게 폐기물이냐?”면서도, 16일까지 치우겠다고 매직으로 크게 써놓고 그 사이에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설마 자기네도 사람인데…” 했다. 16일(금)에 갔더니 그는 몸만 남기고 청소(淸掃)당한 채 출구 벽을 향해 웅크려 누워 있었다. 13일 아침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와보니 쓰레기차가 캐리어를 실어갔단다. 그 안에는 틀니와 주민증과 사진들, 갈아입을 바지 하나와 여름 이불이 들어 있었단다. 줄이고 줄여 남긴 재산 전부를 폐기물이라며 쓸어간 거다. 한참을 말없이 있다 “차라리 홀가분하다”고 했다. 금요일에 월요일 시한 계고장 부착, 화요일 아침 처리! 상임활동가가 중구청에 항의전화를 하니,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집행했고 모든 수거물은 보관절차 없이 압축처리했단다. 그 법이 설명하는 폐기물의 정의는 ‘사람의 생활이나 사업 활동에 필요하지 아니하게 된 물질’이다.

23일(금) 밤, 여전히 벽을 향해 누워 있었다. 박스 한 장 위 몸 하나. 주무시려니 믿으며 차마 부르지를 못했다. 30일(금) 오늘 밤 그에게 다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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