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보는 계정

김보미 뉴콘텐츠팀장
올림픽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김연경 선수와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 안산 선수의 경기 모습. 사진 속에 두 선수의 개인 계정이 태그돼 있다. 출처 | 올림픽 인스타그램(@olympic)

올림픽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김연경 선수와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 안산 선수의 경기 모습. 사진 속에 두 선수의 개인 계정이 태그돼 있다. 출처 | 올림픽 인스타그램(@olympic)

열흘 전까지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모든 미디어 채널이 올림픽을 이야기한다. 국가 대항전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해도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는 그간의 의구심이 머쓱할 정도로 경기에 빠져들게 한다. 코로나19 상황에 시차 없는 경기를 모여서 함께 볼 수 없는 탓인지 소셜미디어의 실시간 이슈는 매 시각 또 다른 올림픽 키워드로 빠르게 업데이트된다.

1896년 세계 평화의 가치를 좇아 시작된 근대 올림픽은 최근 정치·외교 도구화, 상업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도 스포츠를 통한 화합이라는 근간은 아직 유효한 부분도 있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경기장에 선 선수를 보면 잠시나마 한뜻으로 국민들이 승리를 염원하게 되니 말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사람들이 이런 집단적인 동질감과 연대를 갖게 하는 ‘네이션’(nation·국가, 민족)이 그의 저서 제목과 같은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라고 했다. 국가가 허구라거나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앤더슨은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한 유럽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크리올이 사회적으로 억압된 상황에서 서로 공동의 운명에 바탕을 둔 동료의식을 갖는 과정을 통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설명했다. 집단의 정체성은 필연적이지 않다. 일정 기준에 따른 소속감으로 형성되는데 이때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범주화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앤더슨은 유대를 형성하는 수단으로 소설과 함께 신문의 역할을 강조했다. 같은 언어로 매일 공통된 기사를 읽으며 사회적 관점을 공유하는 행위가 같은 국가(nation)에 속해 있다는 상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과 같은 큰 이벤트로 공동체의 실재를 확인한다. 여전히 국가(민족)주의에 관한 현대의 고전으로 불리는 <상상된 공동체>가 1983년 처음 출판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문의 역할은 점차 소셜미디어와 같은 뉴미디어가 대체하는 듯하다.

김보미 뉴콘텐츠팀장

김보미 뉴콘텐츠팀장

특정 매체의 영향력이 더는 ‘대중’에게 통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에 따른 피드는 개인화된 유니버스다. 유튜브 앱을 동시에 켠다고 같은 영상을 시청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민 모두가 아는 유행어도 더는 없다. 세대와 관심사에 따라 쓰는 말도 제각각이다. ‘공유’와 ‘좋아요’를 통해 서로 지나간 흔적을 쌓으며 느슨한 연대와 소속감을 확인할 뿐이다.

‘피드의 공동체’는 국가와 달리 영토나 국적 등의 경계도, 언어와 시간의 제약도 없다. 신유빈 선수와 겨룬 룩셈부르크 탁구 대표팀 니시아렌 선수가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다”며 “계속 도전하라”고 한 말에 한국 계정들이 ‘좋아요’를 누른다. 여자 배구 한·일전이 끝나자 일본어 계정에서 김연경 선수에 대한 관심을 쏟아낸다. 여자 선수들이 유니폼을 선택할 자유에 대해 말하는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 성범죄 혐의가 있는 선수가 팀에 포함되자 핑크색 마스크를 쓰고 항의한 미국 펜싱 남자 에페 대표팀에 세계의 계정이 응원 메시지를 보낸다. 지구 공동체가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상상한 대로 가고 있다고 확인하는 순간이다. 세계 축제의 한복판, 한국의 여성 선수를 향한 온라인 폭력은 상상하지 못한 피드다. 혐오와 차별의 시선으로 선수를 평가하고, 폭력을 동료의식으로 삼은 공동체는 어떤 동질감을 상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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