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대통령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내놓은 이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다. 원래의 텍스트는 1919년 뮌헨대학에서 이뤄진 강연이었다. 짧은 저작임에도 지난 100년 동안 정치학과 사회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베버가 말한 직업은 ‘소명’의 의미를 담고 있다. 소명이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일인 만큼 헌신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직업으로서의 대통령’은 어떨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일까. 에이브러햄 링컨과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이 만들어졌을까.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는 어떻게 됐을까. 정치 현상의 보편성을 생각할 때 제도적 요인보다 개인적 요인을 일방적으로 중시할 순 없다. 그러나 정치 현상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리더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바로 이 점에서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지도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베버에게 민주주의란 시민의 직접투표로 대표를 선출하는 국민투표제적 원리에 기반하고 카리스마적 리더가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 민주주의’다. 지도자로서의 정치가는 ‘악마적 수단’을 가지고 ‘천사적 대의’를 구현하는 존재다. 악마적 수단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 활용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의미한다.

이런 정치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자질로 베버는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든다. 정치가의 일차적 역할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가치와 이익을 대표하는 데 있다. 이 정치적 대표성에 헌신하려는 태도가 열정이라면, 그 대표성에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가 책임감이다. 균형감각이란 이 열정과 책임감 사이에서 요청되는, 현실을 수용하는 역량이다.

베버가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강조하는 까닭은 정치가 국가의 운영을 떠맡는다는 점에 있다. 어느 나라든 국가의 운영은 국민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국가의 일을 담당하는 정치에는 현실적 성과가 중요하다. 베버에게 정치의 두 가지 치명적 죄악은 ‘객관성 결여’와 ‘무책임성’이다. 객관적 조건을 무시한 채 주관적 판단에만 의존하고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국가 정책을 추진할 경우 그 정책은 국민에게 불행을 안겨준다. 정치는 본디 현실이자 결과이자 책임인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대통령에 대해 주목할 책이 하나 더 있다. 윤여준의 <대통령의 자격>이다. 윤여준은 문제적 인물이다. 어떤 이들이 지난 30년 동안 최고의 정치전략가로 고평한다면, 다른 이들은 정치책략가일 뿐이라고 일축할지 모른다. 이러한 윤여준이 2011년 내놓은 <대통령의 자격>은 탁월한 저작이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실천적 능력 또는 지혜’라는 측면에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격을 분석한다.

윤여준이 보기에 직업으로서의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선 이후의 통치력이다. 우리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관건의 하나가 대통령의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에 있다고 윤여준은 강조한다. 스테이트크래프트란 국가를 다루는 실천적 능력이다. 구체적으로 헌법적 기본원리를 포함한 국가제도의 관리, 국민적 일체감 형성과 통합의 유지, 대내외 각종 현안에 대응할 수 있는 올바른 정책의 수립 및 실행, 그리고 여러 정치세력 및 인물 관리 등 국가라는 법인체의 행위자로서 요구된 각종 능력을 지칭한다.

윤여준의 설명은 기실 소박하다. 대통령의 통치 리더십이 결정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간명한 논리가 광복 이후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돌아보면 그 무게감은 결코 작지 않다. 지금 독자들의 판단은 어떠할까. 윤여준의 분석처럼,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발전과 성공, 혼란과 갈등, 정체와 답보에 역대 대통령의 스테이트크래프트가 심원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대통령제 국가의 숙명이다.

내년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속속 대진표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들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고 평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열정·책임감·균형감각, 그리고 당선 이후의 통치 리더십을 제대로 판별해야 할 터인데,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선택한 리더가 바로 나의 5년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앞으로 7개월 동안 대통령의 역량을 식별하는 실천적 지혜가 우리 국민에게도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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