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후드와 주목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 양궁팀이 세계를 제패했다. 40년 넘게 세계 최강이다.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세계 양궁계에서 독보적 존재지만, 중세에는 유럽에 명궁들이 많았다. 올림픽 종목인 양궁은 영국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에 홍길동이 있다면 영국엔 로빈 후드가 있다. 시대적 배경과 탐관오리 엄벌, 민초들의 영웅 등 닮은꼴이 많다. 로빈 후드의 주요 무기는 활이다. 주 활동무대였던 영국 노팅엄성 인근의 로빈 후드 동상도 활을 든 모습이다. 영국의 장궁은 중세시대 가장 중요한 전쟁 무기 중 하나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다. 장궁의 크기는 대략 1.8m에 달해 약 1.2m인 우리나라 각궁에 비해 크다. 바로 이런 크기 때문에 장궁이라 한다. 유명한 궁수 로빈 후드의 무기도 장궁이었다. 장궁의 최대 사거리는 300여m이고 분당 10여발의 사격이 가능하니 막강한 무기였다. 관통력 또한 뛰어났다. 셔우드 숲속에 은거지를 마련했던 로빈 후드에게는 최적의 무기가 아닐 수 없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활과 화살을 지니고 다녔다. 백년전쟁을 일으켰던 에드워드 3세는 심지어 시민들에게 여가 시간과 휴일에 장궁 사격술을 연마하도록 명령하기도 하였다. 원거리에 유용한 장궁으로 무장한 영국군은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대파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도 궁수로 유명했는데, 그가 가장 좋아한 무기도 영국산 장궁이었다. 우리나라 각궁은 대나무, 산뽕나무, 소뿔과 힘줄, 벚나무 껍질 등 여러 재료를 합쳐 만든 반면, 로빈 후드의 장궁은 단단하고 탄력 좋은 주목을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 특히 최상의 장력을 가진 질 좋은 장궁은 주목의 변재와 심재의 비가 1 대 3이 되는 줄기 바깥 부분만을 사용하였다. 변재는 장력이 좋고 심재는 압축력이 좋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중유럽에서 주목의 공급은 장궁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16세기 초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장궁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자 주목 숲이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유럽 대륙에서 주목을 대량 수입하였다. 영국에 주목을 수출하느라 16세기 말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주목 숲 역시 남아나지 않았다.

때마침 기술의 발전이 주목 숲을 살릴 수 있었으니, 소총의 등장이었다. 소총은 사거리와 관통력이 장궁보다 뛰어났다. 결국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 말기인 1595년 추밀원은 장궁을 소총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덕분에 중유럽 산악지대의 주목 숲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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