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짐이라는 축복

김월회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멋짐이라는 축복

저 옛날 바다 건너, 인천과 마주보는 곳에 제(齊)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일대는 전통적으로 의협 풍조가 성했던 지역이다. 그래서일까, 급기야 이런 일이 생겼다.

용맹함으로 둘째 가라면 성낼 자 둘이 하필이면 동시대를 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성 맞은편에 살다 보니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마주치고야 말았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볼거리가 생겼으니 이를 놓칠 수는 없었다.

평소 자신이 최고 용자라고 뽐냈음에도 막상 마주치자 둘은 주춤댔다. 그렇게 참된 용자가 아님이 막 입증될 무렵, 하나가 나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전율 돋는 한판 대신에 생뚱맞게 술판이 벌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대결이 벌어지긴 벌어졌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안주가 당겼다. 한 사람이 고기 안주를 구해 오려 했다. 그러자 상대가 말했다. “그대도 고기이고, 나도 고기요. 다른 데서 구할 필요가 무어 있겠소?” 둘은 조미료를 옆에 두고 술 한 잔에 자기 몸 한 조각씩을 썰어 안주 삼아 먹었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저 옛날, 누군가가 지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리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떠할지. 이 이야기를 두고 호승심 때문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비판할 줄 모를 이는 없을 것이다. 호승심에 눈이 멀면 일도 망치고 삶도 망하게 됨을 모를 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승심에 눈먼 어리석음이 나의 삶,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

맹자는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희소하다고 했다. 도덕심의 유무가 그것이다. 그런데 유의할 점이 있다. 도덕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아끼는 마음이요, 활동이지 남에게 잘 보이려 갖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덕은 ‘나’가 당당하기 위해서, ‘나’가 주도하는 ‘나’의 삶에 내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갖추고 또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정말 멋질 수 있다. 생의 대부분을 호승심에 절어 바이러스 같은 삶을 자랑하듯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역사를 만들어온 주체는 그들이 아니라 도덕심으로 호승심을 가뿐히 눌러온 이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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