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촛불’을 비웃는 이들에게

송기호 변호사

미국은 한국에 30개월령이 안 된 소에서 나온 쇠고기만 수출해야 한다. 이 기준을 지킬 수 있다고 인증받은 86개 미국 작업장만이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다. 모두가 2008년 광우병 검역 촛불의 결과이다.

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촛불 살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조사해보라고 했다가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퇴임 후 2015년에 낸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는 ‘터무니없는 괴담에서 시작한 광우병 정국으로 새 정부는 출발부터 하나의 큰 장벽을 만났다’고 썼다. 그런데 광우병 검역 촛불을 괴담 집회로 부르는 이들이 꽤 있다.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지난달 페이스북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악마화했던 당시의 광화문 집회’라고 했다. 그리고 서민 교수도 같은 때 조선일보 기고에서 ‘별다른 근거도 없는, 좌파 특유의 거짓과 선동에서 비롯된 이 시위’라고 썼다.

광우병 검역 촛불을 비웃는 이들에게 묻는다. 미국은 오랫동안 한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미국이 한국산 쇠고기를 악마화한 결과인가?

세계무역기구(WTO)의 164개 회원국은 검역주권을 향유한다. 광우병 검역 촛불은 태평양 너머 미국 육류 작업장에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이 나라 정부가 검역주권을 잘못 행사한 것에 대한 분노였다. 조선일보조차 2008년 5월13일 기사 1면에서 “정부 ‘동물성 사료 사용 규정’ 오역” “쇠고기 협상 총체적 부실”이라고 썼듯이,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대미 협상이 원인이었다.

당시 협상 결과는 무엇이었나? 협상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아예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금지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30개월 월령 제한을 유지할 수 없게 했다. 상징적인 사건으로 2008년 4월18일, 이명박 정부는 미국이 일부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주지 못하게 하는 ‘강화된 사료 조치’를 공포하면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도 수입하겠다고 입법예고 했다. 미국은 이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바로 이틀 뒤인 20일, 위 조치를 공포했다. 서로 미리 밀실 합의를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식으로 30개월 월령 제한이라는 중요한 기준을 무너뜨리려 했다.

이명박 정부는 보편적 국제규범을 지키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식품규격위원회(코덱스), WTO 등 국제기구에는 국민의 생명, 건강, 안전 관련 정보를 국민과 소통하는 규정이 있다. 이를 ‘위험 정보 소통’이라고 부른다. 이는 정보의 일방적 전파가 아니다. 정부와 시민을 포함한 모든 이해 관계자들에게,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적시에 의견과 정보가 교환되고, 이것이 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WHO가 이 가이드 라인을 만든 때가 1995년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은폐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다시 발생한다고 해도 수입금지할 수 없게 했다는 내용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미국의 이른바 사료 조치 내용을 거꾸로 국민에게 알려주었다.

위험정보소통은 지금도 매우 중요하다. 일본이 지난 4월13일,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2년 후쯤 바다에 버리기로 결정했다. 국민의 우려가 매우 높다. 일본의 태도로 볼 때, 한국은 앞으로 1년 안에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일본의 오염수 방출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방출 중단을 요구하는 국제 소송을 제기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결정은 한국인의 밥상과 수산업 그리고 앞으로의 한·일관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국제기준에 따라 해당 정보를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적시에 공개하여 그 의견과 정보가 결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방사능 오염수 문제 해결에 대한 합리적 여론 형성이 가능하려면 관련 정보를 지금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럼에도 외교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일본 방사능 오염수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원안위는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모호한 답변을 하거나 답변을 지연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정말로 일본이 그런 잘못을 저지른다면 일본이 스스로 불법을 쌓는 일이다.

누구든지 2008년의 광우병 검역 촛불 앞에 겸손해야 한다. 국민은 생명과 안전에 관한 정보를 그저 전달받는 대상이 아니다. 지금의 코로나19 방역이 국민의 지혜와 판단에 터잡아 이루어지듯이, 국민은 위험정보소통 시스템의 주체이다. 광우병 검역 촛불을 비웃는 이들도 이 말에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의견을 결정에 반영하려면 국민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출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외교부와 원안위는 위험성 정보소통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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