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도 시작도 하지 말 것읽음

송민령 공학박사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시도도 시작도 하지 말 것

어느새 8월이다. 2021년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연초의 다짐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연초의 다짐을 지키긴커녕 기억도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않을까? 8월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그동안 수십번 새해를 맞았지만 새해의 다짐을 그 해 1월 말까지라도 지킨 경우조차 드물 것이다. 이처럼 우리 대부분은 유리 세공품처럼 섬세하고 나약한 의지의 소유자다. ‘드라마를 딱 한 편만 봐야지(혹은 게임을 딱 한 판만 해야지)’ 하고는 멈추지 못해서 늦게 잠들며, 매일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은 종종 작심삼일에 그친다.

송민령 공학박사

송민령 공학박사

이렇게 실낱같은 의지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아편, 코카인 같은 마약이다. 중독성 약물들은 의사결정과 관련된 뇌 부위의 작동 방식을 바꿔서 약물 섭취를 반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약에 중독된 이들이 마약에 저항하는 의지력은 중독되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약하다. 가족과 친구를 잃고, 생활이 무너지고, 반복된 복용으로 쾌감은 줄고 금단증상만 늘어도,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 범죄에까지 연루되고도 마약을 끊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마약 중독은 의사결정과 관련된 뇌 부위를 바꾸기 때문에 마약 중독을 범죄가 아닌 질병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중독을 범죄로 보느냐, 질병으로 보느냐에 따라 대응 방향이 달라진다. 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약사범을 감옥에 가두어 처벌해야 한다고 여기고, 후자를 믿는 사람들은 중독 환자들을 치료해야 한다고 한다. 다만 후자의 경우, 중독 환자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치료를 강행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중독된 사람이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질병’에 걸렸다고 간주하는 것이 후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중독을 질병으로 보든 범죄로 보든, 본인이 마약에 저항하는 의지를 기르기는 해야 한다. 감옥을 나가든 병원을 나가든, 그 사람은 스스로 마약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하며 뇌는 쓸수록 훈련되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서 받는 재활치료만 해도 여간 힘든 게 아닌데, 약해진 의지로 의지를 치료해야 하는 중독 치료는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어렵다. 오죽하면 세계 최강 대국인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에서는 수십년째 지기만 하겠는가. 미국의 마약사범은 유럽 전체의 재소자보다도 많다고 한다.

약물 중독은 스트레스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똑같이 중독성 약물에 노출되더라도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일수록 중독될 위험이 더 높다. 또 마약 복용을 끊고 참고 있다가도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재발하기 쉽다. 마음이 힘들어 그 힘듦을 잊게 해주는 약물을 찾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럴수록 마약을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약범죄를 해결하려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마약사범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6월9일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은 전년 대비 12.5%나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거래가 늘었고, 다크웹과 텔레그램을 통한 판매가 늘었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10대와 20대의 마약범죄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지난달 20일 서울경제 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마약사범 세 명 중 한 명이 20대이며, 10대의 비중도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혹시라도 마약을 접할 기회가 생긴 분들에게 진심으로 간청한다. ‘딱 한 번이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를 마시라. 생물학적 관점에서 당신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호모사피엔스 유인원일 뿐이며, 마약은 유인원을 비롯한 척추동물의 의지를 박약하게 만들기 딱 좋게 만들어진 물질이다. 혹시 사는 게 힘든가? 그럴수록 하지 마시라. 당신이 힘들다는 것 자체가 당신이 중독 취약군이라는 증거다.

만일 이미 시작해 버렸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되 환경도 바꾸시기를 권한다. 환경 요인 중에서도 사람이 중요하다. 특히 10~20대는 동료 압력에 취약한 세대이다. 내가 마약을 복용하는 쪽으로 유인하는 이가 있다면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떠나라. 그는 자기 자신을 망치다 못해 주변까지 망치는 사람이다.

약 외에 당신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고, 그것들을 최대한 누리면서 당신 생명을 꽃피우기를 바란다. 이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이해하고 아끼고 가꾸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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