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책’아, 더위를 부탁해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출판시장에서 여름은 성수기로 여겨진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여유롭게 책을 만나는 시간, 더위에 지쳐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시원하게 읽을 이야기, 모처럼 맞은 휴가에 잊지 못할 기억을 더해줄 몇 권의 책들 때문이겠다. 서점에서는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 소설을 앞으로 꺼내고, 그만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역사책을 찾는 중장년 독자의 발걸음도 늘어나는 시기다. 그런데 매해 돌아오는 무더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앞서 소개한 출판계의 여름 풍경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여름 성수기와 평상시의 판매 격차는 줄어들었고 눈에 띄는 몇몇 분야의 상승세도 두드러지지 않아 여름이 전하는 계절감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그렇다고 책으로 여름을 만나는 일이 복잡하거나 어려워진 건 아니다. 봄이 되면 곳곳에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흘러나오듯, 여름 하면 떠오르는 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까운 출발점을 찾아보자면 2015년 7월 출간된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수박 수영장>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뜨거운 여름 햇볕에 잘 익은 수박이 반으로 쩍 갈라지자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수박 속에서 즐겁게 노니는 모습을 담은 책으로, 매해 여름이면 이 책을 찾는 발길이 늘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곤 한다. 이야기는 이듬해 7월에도 이어지는데, 같은 작가의 신작 <할머니의 여름휴가>가 앞선 책의 흐름을 이으며 안녕달 작가는 여름의 작가로, 두 권의 책은 여름의 그림책으로 자리를 잡는다.

배경과 소재가 계절과 직접 연결되는 책들이 호응을 얻고 출간된 해뿐 아니라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되새겨지니, 이제 독자는 여름이면 나올 법한 책을 떠올리며 계절로 들어서고 출판사는 실제 어울리는 분위기의 책을 출간하며 계절감을 북돋우는 모습이다. 올여름에도 그림책이 앞장섰는데, 박혜미 작가의 <빛이 사라지기 전에>와 장선환 작가의 <파도타기>는 푸른 바다와 짙은 파도, 여기에 부딪는 눈부신 햇살과 그 짧은 순간을 즐기는 파도타기로 경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전한다. 또 이명애 작가의 <휴가>는 휴가지의 따끈따끈한 열기 속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사람들을 그려 지친 몸과 텅 빈 마음이 어떻게 채워지는지를 알려준다.

이쯤 되면 봄, 가을, 겨울의 책도 떠올려보게 되지 않을까 싶지만, 계절은 때가 되면 돌아오기 마련이니 서두르지 말기를 바란다. 아직 여름이 한창인 데다 지구 온난화로 앞으로 점차 길어진다고 하니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름의 책이 필요하겠다. 앞서 이야기 나눈 수박, 파도타기, 여름휴가 등 익숙한 여름의 풍경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여름의 책 말이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 전력수급과 재생에너지, 오버투어리즘과 해양오염 등 덥고 습한 여름을 피하려 만들어낸 여름의 다른 풍경을 직시하고 직면하는 게 이 계절에 어울리고 필요한 또 하나의 읽기가 아닐까 싶다. 폭염은 “일종의 사회극”이며 “늘 존재했지만 알아채기 어려웠던 일련의 사회적 조건을 드러낸 사건”이라 주장한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폭염 사회>를 여름의 책 목록에 더해본다. 물론 여름이 지나기 전에 읽으면 좋겠지만 여름이 지나 읽어도 좋을 모든 계절의 책이라 주장하고 싶다. 폭염 대신 폭설을 넣어도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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