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저하’현상 뒤집기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최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언론들은 앞다투어 ‘전반적 학력저하’를 문제 삼고 있다. 전반적인 학업성취분포가 M자형을 그리는 가운데 절대적으로 상위권 분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종의 위기상황으로 인식하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내가 보기에 이러한 학력저하의 상당부분은 ‘이해부족’에 있기보다는 ‘연습부족’에 기인한다. 교육이 주력하는 부분은 논리와 추론 등 깊게 이해하는 능력이지만, 실제로 시험점수를 좌우하는 것은 자동화된 연산능력을 강화하는 연습량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성적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게 나오는 이유는 바로 연습에 의한 자동화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자동화 연습은 지겹고, 그래서 흥미도가 떨어진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PISA 성취도는 높게 나오지만 학습에 대한 흥미도가 낮게 나오는 이유다. 기술 강국들에서는 이런 연습을 우리보다 훨씬 덜 하고 PISA 성적도 낮게 나오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 할 ‘포스트-휴먼’시대에는 그리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없다.

인류문명사에서 인간은 연습이 필요한 부분들을 점차 외주화해 왔다. 문자를 통해 기억을 외부에 저장함으로써 암기훈련을 줄였고, 계산기를 통해 계산능력을 외주화함으로써 연산연습을 줄였다. 이제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추론능력의 일부를 외주화한다. 인간의 역량 가운데 지겨운 연습에 의한 숙달은 기계에 맡기고 자신은 호기심에 충만한 깊은 사유와 추론에 집중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문제풀이 연습에 시간을 쏟아야 할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사태 속에서의 ‘학력저하’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공부란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근본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현대 학교교육은 지극히 표준화된 정답을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교과와 학습 그리고 교수활동이 짜여 있다. 학교는 표준화된 수업과 평가라는 공정을 통해 학생들을 대량생산한다. 정밀가공을 위해 무한반복의 연습이 필요한 것처럼 학교공부도 무한반복의 연습에 시간을 할애한다. 학력, 즉 학업성취도는 제조업 생산공정에 기반한 근대학교체계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다. 표준화된 노동을 개인별로 오차 없이 수행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것처럼, 학습은 개인단위에서 오차 없이 암기하고 연산하는 능력을 기른다. 100점이란 오차 없음을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형성된 능력은 제조업에 기반한 생산경제에 적합한 능력일 뿐, 민주사회와 인공지능의 미래사회를 준비할 만한 능력은 아니다. 더 이상 인간을 기계적 연산과 암기의 노예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경쟁해야 할 대상은 기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기계를 통제하고 디자인해야 할 존재들이다.

또한, 지금의 학교는 지나치게 ‘개인완성형’ 인간을 목표로 한다. 혼자 모든 것을 잘해야 경쟁에 이길 수 있는 각자도생형 인간이 목표이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수학이 부족한 인간과 인문능력이 부족한 인간이 모여 2인3각 경기를 벌일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다. 부족한 개개인들이 협력하고 소통하며 창발적 전진을 이루는 방식의 집단공조 학습이 필요하다. 예컨대 인공지능이 결국 부족한 용량의 컴퓨터들이 대거 연결되어 완전하지 않은 데이터들을 하나의 총체성으로 읽어내는 능력인 것처럼, 각자 부족하고 도움이 필요한 인간들이 서로 연결하여 더 큰 문제에 도전하는 방식의 학습이 학교 안에서 경험될 필요가 있다. 학교 자체가 하나의 ‘집합지성’을 경험하고 창발적 지식생산을 위해 공존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연습보다는 호기심의 창이 열리고 그로 인한 실패를 책망하지 않는 학교의 모습을 그려본다.

반복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지성은 각자 다른 독특한 생각들을 하지만 이들이 서로 함께 생각하고 사회를 구성하며 재화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제 동일한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인정해줄 수 있는 ‘포스트-근대’ 방식의 수업과 평가방식이 필요하다. 이것은 교육과정 개정만으로 안 된다. 교실에 첨단장비를 가져다놓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수업을 구성하고 평가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서로 융합하고 소통하며 형성해내는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집합적 활동이 교육의 최종 결과물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결과물은 개별적으로 평가할 수도 없으며 서열화될 수도 없다. 우리가 가려는 궁극적 지점은 개인지능이 아니라 집단지성이며, 개인차원의 완성이 아니라 집단이 만들어내는 미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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