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랑’ 고사에 비춰본 남북관계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최근 남북관계에 변화가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요청으로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것이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던 현 정부에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이어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한·미연합훈련 관련 담화 발표로 한국 내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현재 우리의 논쟁이 한·미연합훈련의 연기 또는 규모에 집중되어 있는데 북한이 변화를 만든 원인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는 다발도 아닌 장미 한 송이를 받으면서도 미처 보지 못한 가시에 찔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고 아들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통치자로 등극했다. 당시 한국 내 일각에서는 스위스 유학생활로 서구 제도와 문화를 경험한 김정은이 아버지와는 다른 정책을 택할 것이란 분석과 논쟁이 분분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2012년 4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장거리 로켓인 ‘은하 3호’의 발사 실험을 단행하고 결국 성공했다. 이어 2013년 2월에는 세 번째 핵실험을 실행했다. 국제사회는 각각 유엔안보리 결의 2087 및 2094호를 통해 비판과 우려를 표명했다.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도 장거리 미사일과 핵 실험을 이어가자 2013년에 이코노미스트지는 북한의 변하지 않는 행동을 전갈의 본능에 비유했다. 17세기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인 장 드 라 퐁텐의 우화인 ‘전갈과 개구리’는 전갈이 개구리에게 자신을 등에 태워 강을 건너달라는 부탁에서 시작한다.

개구리는 전갈이 언제 독침으로 찌를지 몰라 거절한다. 전갈은 만약 강을 건너다 독침을 찌르면 개구리는 물론 헤엄을 치지 못하는 자신도 강에 빠져 죽을 것인데 찌를 까닭이 있겠냐고 설득한다. 결국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게 되지만 강의 중간쯤에 왔을 때 전갈은 독침으로 개구리를 찌른다. 개구리는 죽어가며 왜 찔렀냐고 묻지만 전갈은 자신도 모르게 본능에 의해 찔렀다는 대답과 함께 강에 빠져든다.

2017년에는 타임지 기자로 활약했던 김성학이 <전갈의 절규>를 발간하며 북한이 왜 공격적이고 핵과 미사일 도발이라는 본능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했다. 북한에서는 반제반미를 통한 주체사상이 김씨 체제를 지탱해왔고, 세대를 거쳐 이에 익숙해진 북한 사회는 반미감정 및 핵과 미사일의 본능과 관성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분석이었다.

서구에 ‘전갈과 개구리’ 우화가 있다면 동양에는 결이 유사한 중국의 중산랑전(中山狼傳)이 있다. 동곽(東郭) 선생은 중산으로 가는 도중 사냥꾼의 화살을 맞은 이리 한 마리를 숨겨주었다. 하지만 위기를 넘긴 이리가 배고픔으로 인해 도리어 그를 잡아먹으려 했다. 동곽 선생은 이리가 도리에 어긋남을 지적하지만 이리는 오히려 하늘이 인간을 나게 했을 때 본래 이리에게 먹히도록 만든 것이란 궤변을 늘어놓았다. 결국 지나가던 노인의 지혜로 동곽 선생은 위기를 벗어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명나라 문학가 마중석(馬中錫)이 창작한 중산랑전은 이리는 물론 고루한 동곽 선생의 무분별한 겸애(兼愛) 또한 비판하고 있다. 상대의 본능과 본능을 가지게 된 원인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분별한 선의는 오히려 위기를 초래하거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인도에는 한 수도승이 전갈에 계속 찔리면서도 손에 올려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이 수도승에게 왜 전갈을 구해주느냐며 묻자 그는 찌르는 것은 전갈의 본능이고 구해주는 것은 수행자의 본성이라며 전갈의 본능 때문에 자신의 본성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고 대답했다.

북한의 본능적인 도발행위로 인해 대화와 포용적인 대북정책의 기반을 바꿀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분별한 겸애와 희생은 자칫 상대의 전략적 오판과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오히려 정체시킬 수도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수행자의 자기희생적인 대응에 대해서는 한국 내 분명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다.

끝으로 전갈에게 찔렸던 개구리의 본능에 관한 이야기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배고픈 개구리가 장미꽃 위에 앉은 나비를 발견했다.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나비를 향해 혀를 길게 뻗었다. 하지만 개구리는 나비를 채기도 전에 장미가시에 혀가 찔려 고통이 밀려왔다.

아직 본능을 바꾸지 않은 또는 바꿀 대내외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북한이 태도에 작은 변화를 보였다. 만약 한국이 우리의 본성을 유지하며 이를 활용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장미꽃이라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을 가시가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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