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에 달린 국가 명운읽음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녹색성장이 화두가 된 지도 오래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전략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한국의 녹색성장은 구호에 그쳤고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약진했다. 2020년 현재, 한국은 38개 OECD 회원국들 중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특히 독일의 경우와는 극명히 대비된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독일 발전량에서 석탄화력 비중은 43%에서 24%, 원전 비중은 22%에서 11%로 줄었고, 대신 재생에너지 비중은 19%에서 45%로 치솟았다. 같은 시기 한국의 석탄화력 비중은 42.3%에서 35.6%, 원전 비중은 31.3%에서 29.0%로 소폭 하락했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1.7%에서 6.6%로 올랐다. 2010년에는 독일의 석탄화력 발전 비중이 한국과 비슷했지만 10년이 지나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와 독일의 에너지전환 성과를 갈랐을까? 한 가지만 꼽으라면 정치리더십의 차이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16년 재임기간 에너지전환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메르켈 총리의 이런 뚝심은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빛났다. 이 회담에서 쟁점이 됐던 사안은 독일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추가 도입을 위해 건설해 온 가스관(노드 스트림2) 문제였는데, 결국 회담결렬 1주일 후 미국 측이 노드 스트림2에 대한 반대를 공식 철회하게 된다.

이 노드 스트림2 갈등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2012년 독일은 발틱해 해저를 지나는 가스관(노드 스트림1)을 완공해 러시아 야말반도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기 시작했는데, 3년 후 이와 똑같은 쌍둥이 가스관을 건설하기로 러시아와 합의했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인 석탄발전 의존도를 줄이면서 추가적인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에너지전환 전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적극 반대하며 압박을 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독재정권이 에너지를 무기화해서 우크라이나 및 동유럽, 나아가 서유럽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이런 강경한 대응은 셰일 가스혁명에 따라 에너지 독립을 달성하고 가스 및 석유 순수출국이 되면서 관련업계가 로비를 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보면 에너지 패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2019년 미 의회는 노드 스트림2 관련 제재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당초 2019년 말 완공 예정이었던 프로젝트가 공정을 90% 이상 마무리한 상태에서 중단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19일 퇴임 전날에도 노드 스트림2 관련 기업과 CEO 제재 행정명령에 서명하기까지 했다. 바이든 정부도 이런 압박과 제재 기조를 유지하면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완고한 반대로 합의 없이 정상회담이 마무리됐다. 미국은 노드 스트림2에 대한 반대를 철회하면서 독일과 기후 및 에너지전환 대비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에너지전환 전략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만들어 세계질서를 다시 주도해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4월에는 2035년까지 화석연료에 의존한 전기생산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천명했다. 최근엔 2030년까지 미국 내 모든 차량의 절반 이상을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물론 탄소세 및 탄소국경세의 도입도 예고했다. 환경 및 에너지 기준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테니 “미국에서 만들라!(Make it America)”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로 국내 4대기업이 미국에 40조원이 넘는 투자를 하기로 결정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의존 비율을 32%까지 늘리기로 했다. 특히 2023년부터는 탄소국경세를 시범 도입해 운영하고 2026년부터는 유럽연합이 수입하는 주요 물품에 적용하기로 했다. 제조업 경쟁력 및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기후변화 대비 에너지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난주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에서 탈탄소 에너지 전환을 위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더 활발히 공론화돼서 한국의 실정에 맞는 계획을 수립하기 바란다. 특히 대선주자들은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차기정부의 대안을 소상히 국민 앞에 제시하고 치열하게 경쟁했으면 한다. 정권 차원을 넘어 국가의 명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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