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에서 멈춘 간호사의 노동현실읽음

몇년 전의 일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간호사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란다. “쉬는 날(Day off)이에요?”라고 물었더니 병원을 그만뒀단다. 다소 놀랐다. 아니 왜? 아직 그만둘 시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저 속으로 물어봤다. 그는 내 생각을 눈치라도 챈 듯 곧장 답한다. “너무 힘들어 (병원을) 나왔어요”라고. 그래서 물었다. “그럼 언제쯤 다시 갈 건데요?” 답은 간단했다. “너무 지쳐서 이제 좀 쉬고 생각해 보려고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코로나19 시기 정부는 간호인력 충원과 처우개선을 약속했지만 현실은 더 암울하다. 간호사 절반은 5년 남짓 되면 떠난다. 신규 간호사는 44.5%나 된다. 인력부족과 야간근무에 힘든 업무까지 감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부족으로 끼니조차 제때 먹지 못하고 일을 할 때가 다반사다. 10명 중 7명이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 있어 이직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니 그만큼 일이 고된 것이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 특성상 주간과 야간의 ‘교대제 근무’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한 달 6∼7회 남짓의 야간근무는 최소화해야 한다. 재정을 고려하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만 이런가. 잠시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독일과 한국 간호사 현실을 비교하면 마음은 더 착잡하다. 독일은 노동자들이 1년에 아파서 쉰 날이 11.7일이다. 반면 우리는 2일에 불과하다. 28일의 휴가가 보장된 독일과 달리 우리는 15일에 불과한데, 그나마 절반밖에 사용 못한다. 인구 10만명당 간호학과 졸업생 수는 독일(43.9명)과 한국(40.5명)이 비슷하다. 문제는 활동 간호사 인력이다. 환자 1000명당 간호 인력(독일 13.9명, 한국 7.9명)도 그렇지만, 급성기 병원의 간호 인력(독일 4.6명, 한국 1명) 부족은 더 심각하다. 그럼에도 한국 간호사는 독일의 68% 임금만 받고 일하고 있다.

사실 간호사 인력 부족과 야간근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1970년대부터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적절한 간호 인력 및 노동조건 표준화 정책을 개발했다. 그 결과 1977년 ILO는 간호 인력 협약과 권고를 한 바 있다. 스웨덴(1978), 핀란드(1979년), 프랑스(1984), 벨기에(1988)는 이미 40년 전 협약을 비준했다. 아주 오래된 협약이라 현재는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간호사의 교육훈련, 일의 전망을 포함한 매력적인 고용 및 노동조건, 노동안전보건 규정, 서비스 계획 참여, 노동조건 상담 및 분쟁해결을 규정한 협약이다.

장시간 노동과 야간근무는 노동자 개인에게는 수면, 생체 리듬, 가족 및 사회생활을 교란시킨다. 피로와 기분, 건강과 안전 그리고 일의 능률 등 모든 것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간호 인력 부족은 곧 의료서비스 질에도 부정적이다. 개인과 환자에게 치명적 사고만이 아니라, 비치명적 사고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 적정 인력 배치와 휴식은 미래의 노동에 필수적이다. 해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고려된 조화로운 노동시간 편성을 모색하면 된다. 이는 장시간 노동과 야간근무, 과도한 업무와 강도 그리고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결근과 이직률을 해소하는 해법 중 하나다.

균형 있는 노동시간 편성을 위해 ‘예측 가능한 교대제 근무형태’로의 이행과 실천규칙을 만드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핀란드와 호주의 혁신적 교대제 모델이나 프랑스의 노동강도 줄이기, 스웨덴의 주 4일제 노동시간 단축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우리가 40년 전의 ILO 협약은 비준 못했더라도 우리 모두를 위한 건강과 간호사의 노동현실을 더는 방치하면 안 된다. “다 좋아지고 혁신되어도 간호사의 삶은 예외인 줄 알았다”는 한 간호사의 말이 아직도 맴돈다. 간호학제 도입 110년인데, 그들의 노동은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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