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한 철인들 그리고 원전 보수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니체는 철인을 기다렸다. 굳이 니체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대선이 가까워지면 철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새로운 영웅이 도래하기를 희망한다. 위대한 누군가가 와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공화국으로 방향을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집단적 무의식이 있는 것 같다. 좀 멀리 올라가면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서 무려 30%의 득표를 했던 진보당의 조봉암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당시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로 나섰지만 후보인 신익희가 선거 도중 사망하는 변고가 생겼다. 이승만을 이길 뻔했던 조봉암은 1959년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당시의 제3지대는 민주당보다 더 왼편에서 형성되었다. 그 뒤 현대그룹의 정주영,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그리고 안철수까지는 민주당보다 좀 더 오른쪽에서 제3지대가 형성되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진 ‘행정의 달인’ 고건과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도 기억 난다. 이제는 갑자기 등장한 윤석열과 최재형이 철인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한국의 보수에도 정말 괜찮은 사람이 등장해서 뭔가 멋지고 그런 일을 하기를 나도 기대했다. 그런데 이 인간들이 출마를 선언한 이후로 영 이상하다. 윤석열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언 정치를 선보이더니 급기야 주당 120시간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해서 깜짝 놀라게 했다가,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이 유출 안 되었다”는 얘기는 도대체 제대로 아는 게 뭔가,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말을 조심하던 최재형도 윤석열과 난형난제다. “국가가 삶을 책임져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해서 그야말로 ‘깜놀’. 근대 국가 이전의 얘기 아닌가. 한 명만 그러고 있어도 정신이 없는데,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거의 매일 술자리에서나 할 법한 얘기들을 여과 없이 막 꺼내놓는 걸 보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최재형 측에서 자랑이라고 꺼내놓은 가족 모임 국민의례 사진은 보너스다. 이들을 보면서 이회창이 얼마나 ‘고품격 인간’이었는가, 새삼 뒤돌아보게 된다.

성숙한 자본주의를 운용하기엔
좀 나사 빠진 윤석열과 최재형
원전 향한 편협한 시각도 닮은꼴
한국의 미래가 아득하다

한국의 남성 엘리트들 중에는 세상 물정 전혀 모르고, 버스나 지하철 타는 법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윤석열과 최재형, 미안한 얘기지만 손에 물 한번 안 묻히고 일상생활 같은 것은 한번도 안 해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삶을 너무 모르고, 복지는 물론이고 정책 혹은 제도의 역사 같은 것에 대해서 너무 해맑아서 뭐라고 하기가 어렵다. 어디까지 아는지를 알아야 어디서부터 이상하다고 얘기를 할 텐데, 도대체 뭘 알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공부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둘 다 거대 캠프들을 꾸렸으니까 옆에서 조언해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텐데. 성숙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아주 좁은 엘리트들 사이의 삶 속에서 그냥 나이 먹은 미성숙들, 어쩌면 이렇게 두 사람이 똑같은지 모르겠다. 성숙한 자본주의를 운용하기에는 좀 나사 빠진 미성숙들 아닌가!

두 사람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원전에 대한 심각한 편향성이다. 영국이나 독일도 지금 보수 정부가 집권 중이지만, 탈원전 정책을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대로 추진하는 중이다. 윤석열과 최재형이 원전에 대해 가지는 입장은 10여년 전 미국의 네오콘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때에도 강하게 원전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반북 보수와 경제 보수를 이어 이제는 ‘원전 보수’라는 새로운 단계로 간다. 아무리 보수라도 에너지 및 물질 전체를 놓고 입장을 정하는데, 이 두 사람은 원전 정책이 에너지 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친원전 인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정치가 원전 정책을 끌고 가는 게 맞는데, 이제는 원전이 정치, 아니 보수 정치를 끌고 간다. 기형적인 상태인데, 아마 윤석열과 최재형은 이게 기형적이라는 사실도 모를 것 같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혹은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나 보리스 존슨 총리에 비하면 같은 보수라고 하기에도 너무 이상할 정도로 좁은 얘기들만 한다. ‘원전 보수’, 그렇게 좁은 시각으로는 절대로 집권 못하고, 미래로 못 간다. 원전 인사들의 좁은 로비에 갇혀 사는 원전 보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폐쇄적 보수가 되어버렸다.

너무도 편협한 ‘원전 보수’가 야권 1, 2위 후보라는 걸 보면 한국의 미래가 아득하다. MB 심지어 박근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정치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법전 바깥의 한국 사회 자체를 아예 모르는 것 같다. ‘문재인 반대’, 이 하나만 가지고 집권하고 통치하기에는 한국은 이미 커졌고, 복잡해졌다. 부디 이제라도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누구와 정치할 것인가, 잠시라도 깊게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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