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동물을 생각한다

돼지 한 마리가 죽었다, 라고 쓴 뒤 지우고선 이렇게 다시 써본다. 돼지 한 명이 죽었다. 그러자 문장 속 죽음은 내 안에서 더 크게 덜컹이는 사건이 된다. 두 개의 문장이 당신에게도 다르게 읽힐지 알고 싶다. ‘명’은 주로 사람의 수를 셀 때에만 사용되어 왔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마리’는 ‘짐승이나 물고기, 벌레 따위를 세는 단위’다. 언어 바깥에서나 언어 안에서나 비인간 동물은 인간 동물보다 덜 중대한 존재로 대해진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역사다. 나는 지혜로운 친구들의 말과 글을 따라가다가 이 역사와 이 언어가 몹시 기구하게 느껴졌다. ‘마리’라는 언어를 명예롭게 할지 아니면 모든 종에게 ‘명’을 붙일지에 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으나 고민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새롭게 말해보고 싶었다. 한 마리씩 말고 한 명씩 세면서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명의 돼지. 한 명의 소. 한 명의 닭. 지금 써내려가고 있는 이 지면에서도 동물의 수를 언급할 때 ‘마리’ 대신 ‘명’이라고 표기하곤 했다. 물론 편집부 선생님들과의 교정 과정에서 금세 ‘마리’로 고쳐졌다. 표준적인 언어에 대한 합의를 철저히 지키는 신문사의 특성상 하루아침에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시대와 함께 계속해서 갱신되는 것이 언어이기도 하다. 표준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천천히 새로워진다. 여러 동물권 단체를 중심으로 이미 다양한 말들이 새롭게 정리되고 있다. 새삼스럽게 살펴볼수록 일상 속 많은 언어가 종차별적이어서다. 이 귀한 지면을 통해 동물을 둘러싼 언어를 다시 합의해볼 가능성을 탐구해보려 한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마리’라는 단위에 대해 동물권 잡지 ‘물결’의 필자 한승희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소개한다. 인간 동물에게 적용할 수 없는 단어는 비인간 동물에게도 쓰지 않을 것. ‘암컷 원숭이 1마리’ 대신 ‘여성 원숭이 1명’이라고 쓸 것. 한승희의 글에서 동물해방물결 윤나리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수를 세는 단위인 ‘명’은 현재 ‘名(이름 명)’ 자를 쓰지만, 종평등한 언어에서는 이를 ‘命(목숨 명)’으로 치환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아우르는 단위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상 속 많은 언어가 종차별적
그 안에 착취·폭력과 억압을 은폐
인간 동물인 내 목숨과
비인간 동물인 누군가의 목숨을
나란히 할 때 그 언어도 바뀔 것

‘물고기’라는 말 또한 다시 생각해볼 점이 많다. 그야말로 ‘물에 사는 고기’를 말하는 단어다. 고기의 사전적 의미는 ‘식용하는 온갖 동물의 살’이다. ‘물결’에 따르면 이 단어에는 “처음부터 살아 있는 존재, 고통을 느끼는 존재의 자리가 없”다. 김선오 시인은 ‘고기’라는 말의 이상함에 관해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 ‘고기를 먹는다’는 문장 속에는 오로지 먹기 위해 동물을 탄생시키고 고통 속에 살게 하다 죽인 뒤 가공하는 과정 모두가 은폐되어 있다. 고기라는 단어 자체가 도축의 현장으로부터 인간의 눈을 가리고 동물의 피 냄새로부터 인간의 코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말이라는 것. 고기에는 동물이 부재한다.” 두루미 출판사 대표인 현희진 시인 또한 언어가 은폐하는 착취와 폭력과 억압에 대해 우려하며 이렇게 썼다. “물에 사는 동물이지만 죽기 전까지는 ‘고기’로 불리다가 죽으면 ‘생선’으로 변모한다. 살아 숨 쉬는 동물을 ‘고기’로 부르는 종차별을 지양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물살이’라는 언어를 쓴다.” 현희진 시인의 말처럼 이미 여러 작가들이 ‘물고기’ 대신 ‘물살이’를 사용하며 문장을 완성하고 있다. 물에 사는 무수한 생명체를 식용 대상으로 한정 짓지 않는 말이다. 또한 공장식 축산과 공장식 수산을 은폐하지 않는 언어다. 다가올 9월 두루미 출판사에서 발간될 단행본 <왜 비건인가>에는 그밖에도 몇 가지 용어 정리에 대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우유 대신 소젖, 달걀 대신 닭알로 표기함으로써 식용 가능한 상품보다는 공장식 축산이 구체적인 생명을 착취한 결과물로 읽히기를 의도한다.

‘모부’라는 단어에도 힘을 싣고 싶다. <왜 비건인가>는 소와 닭을 중요하게 다루는 책인데, 소와 닭에 관한 착취를 이야기할 때에는 닭알과 소젖 생산을 위한 여성 동물의 착취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왜 비건인가>의 역자 전범선과 홍성환은 “이 주제를 논할 때 착취의 직접 대상인 여성이 강조되는 ‘모부’가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비인간 동물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더 착취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종차별뿐만 아니라 성차별의 관점에서도 어째서 ‘부(父)’가 먼저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지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 억압, 착취, 지배는 동물에 대한 지배 구조와 유사하며 각각의 지배 구조는 상호작용하면서 강화된다.”

이 모든 건 한 명의 동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인간 동물인 내 목숨과 비인간 동물인 누군가의 목숨을 나란히 생각할 때 우리가 쓰는 말도 바뀔 것이다. 동물에 대한 언어는 우리 자신에 대한 언어이다. 언어 위에서 우리는 아무도 아닌 동시에 수만명인 어떤 존재가 된다.


Today`s HOT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2024 파리 올림픽 D-100
호주 흉기 난동 희생자 추모하는 꽃다발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폭우 내린 파키스탄 페샤와르 장학금 요구 시위하는 파라과이 학생들
형사재판 출석한 트럼프 파리 올림픽 성화 채화 리허설 APC 주변에 모인 이스라엘 군인들 400여년 역사 옛 덴마크 증권거래소 화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