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농촌, 정의란 무엇인가?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미국 토양학자 프랭클린 킹은 1909년경 조선, 일본, 중국을 방문하면서 흙을 유심히 관찰했다. 1911년에 나온 <4천년의 농부>에서 동북아 벼농사 나라들이 4000년 이상 살아 있는 토양을 보존해왔다며 경탄했다. 그는 그 비결이 ‘똥’에 있다 했다. 사람이 밥을 먹고 싼 똥을 퇴비로 잘 삭혀 다시 땅으로 돌렸기에 흙을 살렸다.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나는 시골에서 아내랑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라며 세 아이를 키웠다. 아침마다 생태 뒷간에 똥오줌을 누고 잘 삭혔다가 텃밭으로 보낸다. 그렇게 20년 이상 땅을 살리니 제초제나 살충제 없이도 작물이 잘 큰다. 물론, 상품으로 팔 건 없다. 자급용이라 못생겨도 좋고 벌레가 좀 먹어도 행복하다.

최근 윤모 국회의원 부친이 5년 전 서울에 살면서 세종시 전의면 논 3000여평을 산 게 알려졌다. 헌법(121조)엔 경자유전 원칙과 소작제 금지가 있다. 농사짓는 자 아니면 농지를 소유 말라! 그 정신 아래 농지법도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데 필요한 기반”이기에 투기를 금한다. 이런 면에서 윤씨만이 아니라 전국 농지의 모든 ‘부재지주’가 문제다. 게다가 그 땅은 위치상 ‘개발 호재’와 내부 정보 없인 외지인이 관심 갖기 어렵다. 현장에 가보면 안다. 이렇게 우리는 농촌을 도둑맞았다!

여기선 투기와 투자 간 경계가 없다. 그 뭐든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지법 위반이다. 또 농업소득보전법에 따르면 실제 농민이 직불금을 수령할 자격이 있다. 사실상 소작인에게 농사를 대행한 것도 문제고 직불금을 누가 받았는지도 문제다. 경상도 창녕의 유기농 농민 한 분도 “이 부근 농지의 70% 이상은 투기”라며 “순수한 농사로는 평당 1만원을 건지기도 힘들다” 했다. 그러니 전국이 투기꾼 놀이터다. 투기 농지는 농어촌공사가 공시지가로 강제 매수할 수 있다.

한편 법제처가 2009년 개정 발표한 농지개량 기준은 “성토는 연접 토지나 해당농지 용수로보다 높지 않을 것”과 “절토는 토사의 유출 붕괴 등 인근 농지의 피해 발생이 없을 것”을 명시한다. 전북 남원에서 2000평 사과농사를 짓는 농민이 전화를 해왔다. 도시의 투기꾼이 몰려와 사과농장 주변 5필지를 매입, 너무 높이 성토해 피해가 막심하다 했다. 행정 당국도 민원을 무시한다. 요즘은 산업폐기물 처리나 태양광·산림개량 명분으로 온 국토가 난도질당한다. 결국, 농토·농촌을 없애고 건물을 짓거나 도시화하는 게 ‘돈 중독’ 경제다.

그러나 사람이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지 돈 자체를 먹을 순 없다. 밥을 위해선 논밭이 살아야 한다. 논밭이 살려면 농민이 땅을 지키고 똥오줌을 순환해야 한다. 흙 1그램 속엔 미생물이 수천만마리나 살아, 지렁이와 함께 양분을 만든다. 한 줌의 흙조차 수천년에 걸쳐 생성됐다. 그런 흙이 지구를 살리고 사람을 살린다. 투기 심리로 땅을 봐선 안 된다는 얘기!

대한민국은 지난 60년간 ‘수출 산업화’란 구호 아래 농촌과 농사, 농민과 농심을 체계적으로 죽였다. 지금 한국을 지배하는 심리는 황금만능주의다. 나는 초등생 이후 선생님들로부터 ‘땅 파고 살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박사까지 공부를 하고 나니 ‘땅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손톱 밑에 흙이 들어가도 즐겁게 밭을 일군다. 똥오줌을 버리지 않고 퇴비로 순환하니 기분도 좋다. 실은, 이런 텃밭 정도야 재미다.

반면, 농사가 생업인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수록 한숨만 나온다. 세상은 농민의 땀과 눈물을 알아주지 않고, 도시의 투기꾼들과 개발업자, 금융업자들만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폼을 잡는다. 세종시 같은 신흥 개발도시가 대표적이다. 수도권 분산 효과는 거의 없고, 투기 심리만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창궐한다. 투기 팬데믹!

현재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다. 그 터무니없던 새만금 간척 사업의 목적도 식량생산 명분이었다. 실제론 농사·농촌·농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땅 투기와 난개발이 만연한 현실, 여기서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이제, 땅 갖고 치는 장난, 제발 그만! 농사 목적이 아니라면 농지 소유를 엄히 규제하고, 투기꾼이 가진 땅은 농민에게 돌려주자. 땅 파고 살지 않으려면 농지를 그대로 두라. 그리고 유기농 농민을 공무원 대우하라! 곡물자급률을 90% 이상으로 높이자. 그래야 땅도 살고 농민도 산다. ‘땅의 정의’를 회복해야 사회 정의도 바로 선다. 사람이 땅을 닮아야지, 땅이 사람을 닮아선 안 된다. 프랭클린 킹이 제대로 보았듯,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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