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 나쁜 소식읽음

이랑 뮤지션·작가
젊은 친구 지구에 온 것을 환영하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곳이라네

둥글고 축축하고 북적대는 곳이라네

자네 이곳에서 고작해야 백 년이나 살까

세이프 섹스를 하고 새 생명을 내보내지 말게

이 지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만들었다네

믿을 수 없다면 조간신문을 사서 읽어보도록 하게

어떤 신문이든 어떤 날짜든 상관없다네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내 2집 <신의 놀이> 앨범에 수록한 이 곡은 좋아하는 작가 커트 보니것의 수필집 <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 본문 107쪽 한 부분에 멜로디를 붙여 만든 곡이다. 같은 책에서 커트 보니것은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만일 내가 죽으면 천국에 올라가 그곳 책임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이봐요. 대체 뭐가 좋은 소식이었고 뭐가 나쁜 소식이었소?”’라고 썼다. 2007년 4월에 사망한 그는 천국의 책임자를 만났을지 궁금하다. 여전히 천국이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나는 좀처럼 인생이 뭔지 모르겠고, 오늘 들은 소식이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위 가사를 보아도 그렇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둥글고 축축하고 북적대는 지구라는 곳에서 고작 백 년 살까 말까 하다는 소식은 과연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이랑 뮤지션·작가

이랑 뮤지션·작가

며칠 전 숫자 1004와 관련해 두 가지 소식을 들었다. 하나는 뒷자리가 1004로 끝나는 대학병원에서 보낸 암병동 진료예약 안내 문자였다. 최근 두 차례 자궁암 검진을 받으며 초기 암으로 예상되는 자궁경부의 이상세포들을 발견했고 곧 대학병원에서 한 차례 더 정밀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두 번째 산부인과 검진 후 의사의 안내에 따라 대학병원 부인암센터 예약을 마친 뒤 영어가 잔뜩 쓰인 소견서를 읽으며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려는데 휴대폰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몇 시간 뒤, 전혀 다른 소식이지만 5년 만에 발매한 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가 지금까지 1004장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즘같이 CD로 앨범을 듣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 시기에 경이로운 판매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두 가지 소식에서 나타난 같은 숫자가 이상한 계시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수많은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그날 하루 만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익숙한 일도 아니었다.

2집 <신의 놀이> 앨범 타이틀곡 ‘신의 놀이’에 ‘중년의 나이에도 절망과 좌절의 무게는 항상 같은가요’라는 가사가 있다. 20대 때, 나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왜 내가 하는 일들은 하나같이 서툴고 애매할까’였다.

꼭 예술 분야가 아니더라도 여러 직업 경력이 있는 사람들의 빠른 판단력과 효율 높은 실행력이 너무 부러웠다. 20대 초반, 예술대학을 휴학하고 이탈리아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며 알게 된 요리사 언니들이 특히 그랬다. 제일 바쁜 시간에 칼에 베이고, 오븐에 데는 나와 달리 그들은 한 번도 다치는 일이 없었다. 커다란 영업용 냉장고 여러 대를 한 번 열었다 닫는 것만으로도 다음날 영업에 필요한 재료들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고, 미끄러지지 않는 주방용 슬리퍼를 신고 춤을 추듯 주방 안을 누비며 다치지 않고 일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당장 해야 될 일과 미뤄도 되는 일이 파악되지 않아 매일 헐레벌떡거리던 내 눈에 비친 언니들은 여유가 많아보였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이들의 하루는 내 하루와 전혀 다른 것 같았다. 아무래도 경험과 여유가 많은 ‘중년의 나이’가 되면, 절망하고 좌절할 일도 대폭 줄어드리라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인 내 눈에 주방의 신처럼 멋지게 보였던 언니들보다 몇 살 더 많은 나이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점점 ‘중년의 나이’에 가까워지고는 있지만, 절망하고 좌절하는 일이 여전히 너무나 많다. 집과 학교,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 속에서 고민하던 시간을 벗어나 사회 속에서, 고된 일과 아픔과 병과 죽음 속에서 점점 더 깊게 절망하고 무겁게 좌절하는 순간이 늘어난다.

오늘 들은 숫자 1004와 관련한 두 가지 소식 중 어느 것이 좋은 소식이고 어느 것이 나쁜 소식일까. 사실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곡의 제목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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