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같은 사람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산촌에 와서 시작한 책읽기 모임이 있다. 올해로 6년째 이어가는 ‘자치와 자급 공부모임’의 우리는 한 달에 1만원씩 연대기금을 모은다. 최근에 사용한 곳은 미얀마 민주주의 투쟁을 지원하는 연대기금이다. 온라인 집회에 같이 참여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참가 후기를 나눌 때, ‘거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더라’고 한 말이 인상 깊었다. 미얀마 민중의 모습에서 ‘우리’를 봤던 그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였다. 그즈음 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란 말을 종종 들었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던 날도 그랬다. 그날 모인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자꾸만 불안했다. 왜 그랬을까, 그곳은 여기서 멀어도 한참이나 먼 곳인데. 대통령은 차에 가득 현금을 싣고 도망가고 나라의 주인으로 행세하던 이들도 제일 먼저 챙길 것을 챙겨 떠난 나라엔 남으면 가장 위험해질 사람들만 남았다. 우리와 같은 여자들도 그런 사람들. 그런데 좀 뜻밖의 외신 사진을 봤다. 숨어서 울고 있을 줄 알았던 아프간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점령자들을 향해 외치고 있는 사진이었다. 손에 든 종이에는 ‘안전을 보장하라’ ‘일자리를 보장하라’ 같은 요구가 쓰여 있었다. 누군가 또 그랬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네요.’ 우리도 그들처럼,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여기서 살길을 찾아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회사가 사라졌다>는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사람들은 회사가 사라지면 노동자도 사라진다고 말한다. ‘법인’은 서류를 통해 청산되지만, 노동자는 사람인데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노동자가 회사와 함께 증발이라도 하는 것인 양 사라짐을 강요하는 사회를 향해, 싸우는 노동자들은 회사가 사라져도 사라질 수 없는 노동자가 있음을 존재로 입증한다. 농촌 지역 여성 주민인 우리들도 8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고, ‘투잡 스리잡’을 뛰며 살고 있다. 우리의 농사와 우리의 돌봄 노동이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지금 지방소멸론은 우리가 사는 곳이 소멸할 것이라고 하고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하는 일이 소멸할 것이라 한다. 사라진 회사와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에게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봤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도처에서 나타났다. 아프간 난민이 한국에 입국하던 날 나는 우연히 동네 노인들의 말을 엿들었다. 뉴스를 보던 노인이 지금은 저렇게 환영받으면서 들어오지만 나중에 떼로 몰려오면 골치 아플 거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라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들어보니 이런 이야기였다. 이제 점점 ‘저런 사람들’이 메뚜기 떼처럼 불어날 거고, 한국도 선진국이 됐는데, 잘사는 나라들이 자기들만 받을 수 없다고 한국도 받으라면 받아야지 어쩌겠나 하는 말이었다. 한국에 들어오면 서울로 보내겠냐 ‘이런 데’로 보내겠지. 그 말이 쿵 하고 머리를 강타했다. 노인은 자신이 흘러온 낮은 땅에, 앞으로 무엇이 고일지 알고 있다. 그는 미래의 기후 난민에게서 접경지역의 주민으로서 실향과 이주의 삶을 살아왔던 과거의 난민인 자신의 모습을 봤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기후위기에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최전선공동체의 모습이기도 하다. 최전선의 존재들은 전문용어로 표현하지 않을 뿐 이미 저 노인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직관적으로 기후위기와 식량위기, 국제 분쟁과 군사적 긴장을 모두 연결시켜 예측하면서 그게 어떻게 자신의 삶터로 들이닥칠지에 대해 나름의 예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탄소할당이 난민할당과 함께 탄소중립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후위기 주범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는 대신, 지금처럼 탄소세나 탄소국경조정 같은 시장주의적 기후정책이 중심이 된다면, 난민수용으로 탄소배출을 상쇄하는 탄소중립 계산법도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도처에서 나타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정치 뉴스엔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 세상에는 못된 재벌과 착한 재벌, 부패한 검사와 정의로운 검사, 비정한 의사와 따뜻한 의사가 나오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없다. 빈자는 언제나 부자들의 휴머니즘을 빛내줄 소품이나 배경으로 소비될 뿐이다. 부자들의 양당제는 어디서나 재현된다. 탄소중립위원회도 시민회의도 마찬가지다. 시민이란 이름은 중간계급 카르텔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 시민 속에는 없는 시민들을,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은 찾아내야 한다. 소멸예정지, 좌초산업, 건조한계선, 기후저지대 최전선공동체의 기층 민중과 멸종위기종, 여기서 살아내고 여기서 희망을 찾아야만 하는 이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정치’를 간절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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