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은 백종원도 구원 못한다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바이러스 대처법이 나라마다 다를 리 없지만 같은 것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문화의 힘은 엄청나다. 마스크 착용을 개인 자유의 억압으로 받아들이고, 백신 접종 권고를 국가의 폭력으로 이해하면 방역정책이 옳은들 효과는 미진하다. 그런데 이게 수백년을 거쳐서 형성된 정서인지라 논리적으로 설명한들 고정관념은 견고하다.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거리 두기는 자영업자들이 영업제한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여러 나라에서 ‘한국에서 볼 땐 파격적인’ 지원금을, 그것도 여러 번 지급하면서 불씨의 번짐을 막았다. 파격을 파격이 아니라고 해석하니까 소모적인 논쟁도 없었다.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일할 자유를 빼앗겼으니 저들을 더 지원하는 건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한국이었다면 같은 정책이 순항했을까? 들리는 이야기론 그렇게 하지 않은 정부에 대한 원망이 큰 것 같다. 영업제한을 받는 업종에 팍팍 돈을 주지도 않고 거리 두기만 강화하니 효과가 없다는 원성과 25만원 준다고 생색내지 말고 진짜로 힘든 이들을 도우라는 지탄이 자자하다. 그럼, 한국의 자영업자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몇 천만원이 지급되면 사람들은 박수를 칠까? 글쎄다. 그 돈은 지금까지의 손실에 비하면 결코 많은 금액도 아니겠지만, 이건 논리의 영역이고 대중의 감정이 이와 일치할지는 의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소비되는 방식은 너무나도 탈사회적이다. 잠시만 TV 채널을 돌려도 이들을 초인, 달인, 고수들로 포장하기 바쁜 영상들을 볼 수 있다. 고군분투했으니 고진감래 아니겠냐는 천편일률적인 서사도 반드시 언급된다. 갑부가 되었다는 아무개의 생애과정은 유사하다. 식당 몇 개가 망하면서 극단적인 생각도 했으나 이를 악물었고, 결국 지금의 부를 이룬 신화의 주인공은 외친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무용담만이 부유하는 곳에서 이들은 성공해서 대박이 난들, 실패해서 쪽박을 차든 다 자기 선택에 따른 결과라는 울타리 속에 갇힌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하자고 하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을 풍기는 이유다. 그러니 힘들다는 이들의 하소연까지는 경청하지만, 백 단위가 아닌 천 단위의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반응이 날카롭다. “장사하면서 위험을 감수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솔직히 가게 차렸다는 건 원래 잘산다는 거지, 팔자 좋게 카페 차려 편하게 살았던 사람을 왜 세금으로 도와줘?” 등등의 반응들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소상공인 대부분은 이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될 사람들이지만, 일반인들 머릿속에 입력된 정보는 이분법적이기에 특정 상황에 대한 해석도 투박하다.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단추였을 거다. 경쟁이 필연적이고 그렇기에 성공과정은 전투적이다. 이 양념에 길들여진 대중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결국 고통은 극복기의 소재로서만 반짝한다. 웅장하고 감동적인 서사는 누군가를 이 지옥으로 끌어들이는 유인책이 된다. 임금노동이 불안정해서 이 지경이 되었는데,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잘못된 구조는 은폐된다. 모든 것은 선택일 뿐이라는 곳에선 강자만 살아남는 오징어 게임만이 ‘공정하다면서’ 반복된다. 골목은 백종원이 구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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