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과 ‘에코사이드’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24일은 ‘세계 기후행동의날’이었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독일 베를린에서 수천명의 기후활동가와 함께 기후파업 집회에 나섰다. 독일 총선을 앞두고 기후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압박 행동이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홍수와 산사태를 지난여름 목격하고도 독일 정치권이 정신 차리지 못하자 거리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기후행동이 곳곳에서 집회를 열고 1인 시위도 벌이고, 정부 주도의 기후위기 대응판을 전복하기 위한 ‘기후시민의회’ 구성도 제안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더 적극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안타깝게도 널리 퍼지지는 못한 것 같다. 과감한 탄소 감축, 미흡한 탄소중립기본법 당장 폐기 등의 주장은 정치권의 ‘대장동·고발 사주’ 공방으로 묻히고 말았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세계가 직면한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거나 경험하고도 기후위기는 여전히 관심 밖이다. 정부나 개인이나 모두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이 위협받고 있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만 위기로 느낀다.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미래세대의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미뤄놓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서서히 생존과 지속 발전을 위한 경영 패러다임의 전환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덕목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ESG 경영은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핵심적인 가치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친환경 경영 노선을 지향하면서 ESG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 비율을 확대하고 탄소 등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사업 비중을 줄이는 기획도 보이기 시작했다. 대선을 앞둔 상황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회이자 대응을 압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기후위기를 선거 의제로 삼는 기후 감수성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들린다.

기후 변화에 대한 리더십에는 진보·보수가 따로 없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표심을 잡으려면 공정성과 집값도 중요하지만, 기후 정책도 잘 짜야 한다. 탈원전은 논란이지만, 탄소중립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신재생에너지의 보급과 개발이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재앙을 피하려면 감축의 속도가 문제일 뿐이다. 베를린 시위에 등장한 ‘석탄 대신 자본주의를 태워라’라는 손팻말이 우리 모두에게 와닿는 절박함이다.

국경을 초월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재앙을 피하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법과 국제법상 환경 범죄에 대한 응징이 필요하다. 지구온난화와 오존층 파괴를 일으키는 탄소 배출과 같은 행위는 그 결과가 초래될 개연성이 있음을 알면서 감행한 때에는 중대한 범죄로 정의되어야 한다. 에코사이드(echocide·생태 학살)가 그것이다.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 학살)에 빗댄 용어다. 둘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다는 점에서 똑같다. 지금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가 범죄는 아니지만, 국제범죄화되어야 한다. 국제형사재판소가 형사 처벌하는 국제범죄는 집단 학살, 전쟁 범죄, 반인도적 범죄와 침략 범죄 4가지다. 다섯 번째 범죄로 에코사이드를 추가해 국가나 기업을 처벌하자는 제안이 12월에 열리는 국제형사재판소 연례회의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기후 변화를 저지하고 감소시키려면 국내법상으로도 기후 파괴적 행태에 형법이 투입되어야 한다. 형법은 형벌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갖고 있으므로 최후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하지만, 지금이 바로 기후재앙을 막을 수 있는 최후 순간이다. ‘100년 만의 유럽 폭우’ ‘캘리포니아의 대규모 산불’ ‘중국의 기록적 홍수’ 등 더는 기후 변화의 진행을 놔둘 수는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 사후적인 손해배상이나 과태료, 과징금으로 대처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대기오염, 토양오염, 산림파괴, 생태계 교란 등을 범죄화하고 형벌을 예고해서 형법이 기후 예방 형법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개인과 기업의 행태와 사고가 친환경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당장 오늘을 사는 데 급급하다. 환경과 기후라는 주제를 언급할 때 자주 인용되는, “오늘 우리가 하는 행동은 내일 아침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를 결정한다”라는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가 에브너에셴바흐의 명언이 떠오른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