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판사를 법조 경력의 초기에 임용하는 제도와 상당 기간 법률직 경력을 쌓은 후에 임용하는 제도 중 좋은 것은 어느 것일까? 판사로 임용돼도 법원 실무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판결 작성이나 심리에 숙달되려면 상당 기간 수련이 필요하고 이는 부장판사의 지도 내지 간여 없이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법원이 판사로 임용한 이들은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하여 비교적 젊고 또 졸업성적이 우수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이 도제식 과정을 거쳐 법원 실무를 익힌 것이 과거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법원 내에서는 이런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판사들이 상당수 있었다. 사건의 결론을 내기 위해 하는 숙의를 합의(合議)라고 한다. 그런데 경력이 높은 부장판사와 임관한 지 얼마 안 되는 배석판사들 간의 합의는 결국 부장판사의 의견에 좌우될 테고, 이것이 합의체를 운영하는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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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993년에 시작된 사법개혁운동은 법원의 순혈주의와 관료적 운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었던 것이다. 논의 끝에 2013년 법제로 채택된 것이 법조일원화 제도다. 이는 본래 인력 수급 사정을 감안한 과도기를 거친 후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의 법률직 경력을 거친 사람을 판사로 임용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법원의 실질적 주도로 금년 8월에 발의되었다가 부결된 법안은 이 10년을 5년으로 줄이자는 시도였다. 그 논거는 여럿이지만 핵심은 법원의 인력 수급 사정이다. 각 분야에서 10년 이상 종사한 경력자들이 판사직에 지원하지 않을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론자 중 국회 본회의에서 반대토론을 벌였던 이탄희 의원의 주장은 다르다. 최소 경력을 5년으로 할 경우 실제로 판사로 임용되는 상당수는 재판연구원과 대형로펌 근무경력을 가진 이들이며, 이 법안은 실상 관료주의와 순혈주의로의 복귀를 의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공적 마인드를 키워 온 경력자,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고 평범한 시민의 삶을 아는 사람이 판사로 임용되어야 하며, 5년 경력으로의 법 개정은 이런 시도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현 판사 임용제도는 최초의 실험
이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봐야
과제는 효과적 평가 방식 개발
능력과 품성 갖춘 판사 뽑는 것
그런 노력 없이 논쟁은 무의미

누구 말이 옳을까? 우선 이 문제가 명분과 현실의 대립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 주장은 대체로 젊은 나이에 뽑힌 판사가 똑똑하고 일 잘하는 판사가 되는 반면 늦은 나이에 뽑힌 판사는 업무 처리 능력은 다소 떨어져도 품성이 좋은 판사가 된다는 추정이나 경험에 기대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실증적 연구 결과로 검증된 바는 없다. 내 경험으로는, 그런 추정이 옳다고 할 만한 경우를 많이 보았지만 어느 쪽이든 반대의 사례 역시 적지 않았다. 그냥 판사 개개인에 따라 달랐을 뿐이다. 이 문제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어떤 제도를 택할 것인지는 우리가 바라는 재판이 어떤 것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신속하고 능률적이며 판사 개인에 따른 편차가 없는 재판이 좋은가, 아니면 꼭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독립적이고 다양한 가치관이 반영된 재판이 좋은가. 하지만 이것도 최소 경력을 몇 년으로 할 것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게다. 일단 판사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5년이든 10년이든 기다리며 경력을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시 판사 개개인의 자질에 달려 있다.

그런데 연전에 벌어진 사법농단 사건은 법원에 대한 신뢰와 평판을 심각하게 망가뜨렸다. 그 사건과 관련하여 피의자든 참고인이든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사람은 100명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중 사법권 독립을 해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은 이들은 대부분 고위직 판사이거나 이른바 ‘엘리트 판사’였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오늘날 사법운영의 큰 문제는 판사의 아만(我慢)에 있다는 것이 법대 아래에서 재판을 보아 온 이들의 공통된 견해라는 점이다. 법원에 오는 사건의 대부분은 꼭 수월한 법률 실력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평균적 능력을 갖추었다면 품성이 훌륭한 판사는 어떻게 해서든 좋은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행의 판사 임용제도는 우리 사법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실험이다. “재판은 수학이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할 경우의 이해득실은 아직 평가하기에 이르다. 그러니 이왕에 시작한 제도를 끝까지 시행해 보지도 않고 중도에 바꿀 일은 아니다. 정작 법원의 과제는 임용절차에서 효과적인 정성적 평가 방식을 개발하여 능력 있으면서도 바른 세계관을 가진 판사를 뽑는 것이다. 어렵겠지만 그런 노력 없이 논쟁을 벌이거나 새 입법을 시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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