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의 절망과 희망에 대하여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나는 시를 쓰지 않지만 지난여름 펼쳐든 새 시집에서는 꼭 내가 쓴 듯한 문장을 읽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른 우주에서 시인이 된 훌륭한 버전의 내가 쓴 것만 같은 문장이었다. 강지이 시인의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에 실린 글이다.

“여름 샐러드를 먹으면서/ 흰 눈이 쌓인 운동장을 함께 달리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고, 또 있었더라도/ 우린 앞으로 잘 달릴 수 있다./ 그런 믿음은 이상하게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어떤 어색함도 없이 곧바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달리기와 용기와 믿음에 관해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이 시인과 내가 같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작가들처럼 느껴졌다. 시집의 첫 장에는 더 놀라운 문장이 적혀있다.

“결코 절망하지 않을/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절망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이런 문장은 쓸 수 없을 것이다. 절망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크게 휘청거려본 사람, 그럼에도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 쓴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의 표정이 마음에 걸려서
난 느슨한 비건으로 살게 됐다
급진적이고 적극적인 실천보단
나약함에 흔들리는 비건을
이해하는 비거니즘을 하고 싶다

그러자 내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젊거나 나이들었거나 죽고 싶거나 살고 싶은 친구들. 나도 그들이 결코 절망하지 않기를 바랐다. 내 글의 대부분은 그들 때문에 쓰여졌다. 아점 메뉴와 저녁 메뉴도 그들에 의해 바뀌었다. 친구들은 나를 작가로 살게 하고 느슨한 비건으로 살게 했다. 하지만 글쓰기나 비거니즘이나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세상의 복잡함, 그리고 나의 나약함과 비겁함과 게으름 사이에서 끊임없이 헷갈리게 되는 일이다. 언뜻 비건은 헷갈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동물권과 기후위기에 대해 명료한 지식과 확고한 신념을 가진, 윤리의식으로 무장한, 웬만해선 헷갈리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어딘가에는 그런 비건도 있을 것이다. 비건에게 쏟아지는 온갖 질문과 조롱에 대답하다가 온갖 탄탄한 논리와 생활양식을 갖추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답을 망설이는 비건의 얼굴 또한 나는 안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저 고기 먹기를 멈추기로 한 얼굴들 말이다. 이 흔들림이야말로 비거니즘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느낀다.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은 이 흔들림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허용하는 비거니즘이다. 이에 관해 나의 동료 작가 안담은 “필연적으로 비거니즘은 실패와 용서의 장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이 급진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언제나 이상하게 느껴진다. 비건은 이미 결정했기 때문에 되는 게 아니라,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되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비거니즘은 식물 먹기가 아니고 동물 먹지 않기이다. 그들은 무언갈 하는 게 아니고, 도리어 하지 않는다. 비건은 결정을 보류하고 판단을 중지한다. 그들은 내일 뭘 먹어야 할지 확신하는 사람들이기보다는, 어제 먹은 것을 되새김질하고 오늘 먹을 것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우유부단한 사람들에 가깝다. 아마도 내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친구의 표정이, 친구인 개의 표정이, 친구인 개의 친구의 표정이, 그의 마음속에서 모래알처럼 자분자분 씹히기 때문에.”

이것은 관악여성주의비평동인이 창간한 잡지 ‘매거진 OFF’의 특별호 기획의 말에 실린 글 중 일부다. 촘촘하고 짜릿한 글들이 잔뜩 모여 있어서 어지러울 정도로 멋진 웹진인데 off-magazine.net에서 죄다 무료로 읽어볼 수 있다. 안담의 표현대로 나 역시 친구의 표정이 마음에 걸려서 비건이 되었다. 우정의 범위를 넓히다가 벌어진 일이다. 안담은 온갖 종류의 비건을 헤아리며 이렇게도 쓴다. “비건이 인간인 한, 어떤 비건도 인간 이상으로 또는 인간 이하로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면. 그러므로 유독 비건에게 무적의 이론과 흠잡을 데 없는 실천을 요구하는 일이 부당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좀 더 편안하게 비건이 되는 일의 슬픔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해보아도 좋지 않을까?”

나에게 이 웹진은 휘청거리는 비건 옆에서 마찬가지로 휘청거리는 비건 혹은 논비건 친구가 쓴 이야기들로 읽힌다. 고기를 먹지 않고도 잘 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어떻게 계속 친구일 수 있을까? 어떻게 절망했다가 희망하면 좋을까? 비거니즘을 대답이 아닌 질문의 시작으로 여기는 글들이며, 결코 절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친구가 없었다면 쓰여지지 않았을 글들이다. 이 글들은 나를 포기했다가도 다시 돌아오게끔 한다. 안담이 썼듯 이 시대의 인간은 동료를 가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우정의 마음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상하게도 그런 믿음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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