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본소득은 음소득제의 사촌인가 맏형인가

송재도 | 전남대 교수

여권의 이재명 대선 후보가 기본소득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고 야권의 유승민 후보 또한 ‘유사한’ 음소득제 방식의 공정소득을 제안하면서 기본소득은 국가적 이슈가 되었다. 필자의 ‘유사한’이라는 말에 동의를 못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만을 놓고 보면 동일 정책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유승민 후보의 안에서는 1인당 연 1200만원 대비 소득이 부족하면 그 차액의 50%를 정부가 보조한다. 소득이 없는 경우 1200만원의 50%인 600만원, 1200만원을 벌면 보조금 없이 1200만원이 소득이 된다. 그런데 기본소득이 600만원이고 개인의 소득에 대해 50%의 세금을 매기면 최종 소득이 정확히 같아진다.

송재도 전남대 교수

송재도 전남대 교수

이 정책들은 기준소득 이하의 사람들에게 지원을 강화하기에 그에 따른 증세가 필연적이다. 이때 음소득제는 그냥 세금을 더 걷자는 것이고, 기본소득은 기준소득 이상의 사람들에게도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그만큼 세금을 더 많이 걷자는 것이다. 더 걷는 세금과 지원금의 차이를 두고 보면 역시 두 제도는 동일한 것이다.

그렇지만 두 제도는 마음의 문제에서 차이가 크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카너만 등이 주장한 전망이론에 따르면 길을 가다 ‘10만원을 잃어버린 경우’와 ‘12만원을 잃어버렸는데 다시 2만원을 주운 경우’ 중 후자가 덜 실망한다고 한다. 10만원 잃어버리나 12만원 잃어버리나 마음 아프기는 비슷하지만 2만원을 주운 기쁨은 꽤 큰 것이다. 그렇다면 더 많이 걷고 일부를 기본소득으로 돌려주는 방식이 음소득제 대비 증세에 따르는 저항감을 줄여줄 수 있다. 기본소득에서 재원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들 하지만 증세 저항감을 감소시킬 수 있는 기본소득이 현실성이 더 높을 수 있다.

과거 무상급식 논란에서 공짜 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학생들에 대한 낙인효과가 자주 언급됐다. 가난한 사람들만을 지원하려면 이들을 정의해 낙인을 찍어야 한다.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반면 기본소득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아닌 모두가 누리는 권리이기에 사람들에게 떳떳함을 안긴다.

누군가 동네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때로 마을 연주회를 하면서 살고자 한다고 생각해 보자. 한 달에 50만원 (연 600만원) 벌기도 어려운 이런 일은 직업이 되기 어렵다. 그런데 음소득제가 실행되면 3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일 년에 900만원의 소득이 생기고 그래도 밥벌이는 하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음소득제하에서 이런 사람들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반면 기본소득하에서는 똑같은 최종 소득을 얻으면서도 세금을 내는, 적게 벌더라도 보람 있는 일을 하겠다는 떳떳한 자기선택이 되는 것이다. 미묘하지만 필자에게는 큰 차이로 느껴진다.

이런 예시는 두 제도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두 제도의 공통된 장점도 보여준다. 기본소득이나 음소득이 제공되면 과연 사람들이 일을 안 하려 들까? 현재의 생계급여는 소득이 생기면 그만큼 지원금을 깎는 방식이라 근로의욕이 제거된다. 반면 기본소득이나 음소득제하에서는 일할수록 소득이 증가하므로 일할 유인이 생긴다. 너무 작아 보이는 지원금에 만족하여 일을 안 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또 지금은 너무 임금이 낮아 직업이 될 수 없는 일들이 직업이 될 수 있다. 봉사, 취미, 흥미에 따른 연구 모두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기본소득과 자기 보람이 결합되면 직업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이 커질수록 이런 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지금도 일자리가 큰 문제이지만 기술변화는 이를 더 심각하게 만들 것이다. 정부가 억지로 만드는 일자리가 비효율적임을 누구나 느낀다. 기본소득과 같은 방식은 이 문제를 시장의 자율로 해소시킬 수 있다. 일자리 나눔도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더 용이해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기본소득은 매우 친시장적인 방식이다.

정리하자면 기본소득이나 음소득제 모두 큰 진보라고 생각되며, 비교하면 기본소득이 더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제도들은 큰 변화를 수반하기에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수적이다. 탄소세나 토지보유세와 같은 교정세를 통해 재원을 만들어 실험적인 수준의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방식은 훌륭한 과도기 대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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