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르는 ‘그라운드 떼창’읽음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의 오프사이드] 다시 부르는 ‘그라운드 떼창’

왜 아이들은 부모님의 침대에서 뛰는가? 부모님이 외출하면서 침대에서 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금지의 공간이다. 그리고 곧 부모님이 귀가하기 때문이다. 금지의 시간이다. 이 시공간의 금지 때문에 부모님의 침대는 더없이 짜릿한 위반과 유희의 공간이 된다. 마당에서도 거실에서도 자기 방에서도 뛰놀 수 있지만 그곳에서는 일시적 위반의 모험이나 순간적인 유희의 짜릿함이 덜하다. 금지된 것을 금지하는 것, 그것이 유희와 해방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가 1967년의 연속 강연에서 한 말이다. 나중에 <헤테로토피아>라는 책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서도 발간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967년이라는 ‘사건의 시간’이다. 전후세대의 사상적·문화적 저항이 서구 곳곳에서 전개된 이른바 ‘68혁명’의 과정에서 푸코는 규율과 억압의 현대사회를 분석하면서, 물리적으로 발달하고 구조적으로 통제된 도시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 ‘헤테로토피아’를 제시했다.

지배적 권력과 담론에 의하여 특정한 공간에 질서가 부여된다. 대체로 권장 사항보다는 금지 사항이 많은 이 질서에 따라 인간의 신체가 통제된다. 이때 저항 또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 거부와 위반의 행위가 이뤄지기도 한다. 혹은 다른 장소, 다른 공간에서 기존의 질서와 규율을 위반하는 행위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질적인, 전복적인, 나아가 해방의 정념이 순간적이나마 넘쳐나는 이러한 시공간의 상태를 ‘헤테로토피아’라고, 푸코는 불렀다.

이를 스포츠 현장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물론 위반이나 해방 같은 정치적인 의미를 내재한 이 용어를 통상적으로 일반 시민의 ‘여가 선용’의 장으로 여겨지는 축구장이나 야구장에 과도하게 적용하는 것이 위험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그동안 스포츠를 너무 순응적으로 인정해온 것은 아닐까. 그런 반문이 오히려 필요하다. 그런 반문과 반론에 의하여 스포츠의 가치는 더 확장되고 그 시장과 산업도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이후 100여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는 크게 ‘열렬한 국가주의’와 ‘건전한 시민문화’라는 두 개의 바퀴로 발달하여 왔다. 그 성과도 있고 그 폐단도 있다.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전개되었으니 ‘시민문화’에 국한하여 보면, 스포츠를 관람하거나 직접 즐기는 행위에 대한 기존의 시각은 ‘여가 선용’이거나 ‘가족 나들이’ 차원이었다. ‘중산층 가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더러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일탈 행위가 일어날 때 중계진이 ‘아이들이 지켜보고 온 가족이 함께하는 경기장인데 저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한다. 맞는 말이고, 그런 일탈은 금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중산층 가족문화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 국가대항전 때는 ‘국민’이 동원되고 프로경기에서는 ‘가족’이 호명되지만,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그 경기를 보고 있는 사람은 국민이나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경기에 몰입한다. 아버지나 큰딸이 아니라, 이 거칠고 황량한 도시를 살아가는 외롭고 쓸쓸한 인간이 안타를 기다리고 골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에 주목하고 이를 확장할 때 스포츠의 가치는 심화되고 그 산업은 확장된다. ‘동원된 국가주의’와 ‘건전한 가족주의’를 넘어설 때, 스포츠의 지평은 끝없이 확장된다.

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헤테로토피아’로서의 경기장을 상상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 우선, 손흥민이 질주하는 잉글랜드와 달리 우리는 아직 ‘위드 코로나’ 이전의 상태다. 축구장이나 야구장이나, 예전의 관중을 찾아보기 어렵고 그들이 외쳤던 함성을 듣기가 어렵다. 한편 스포츠는 ‘여가 선용’이고 프로스포츠 관전은 ‘가족문화’라는 기존의 인식 또한 견고하다. 외로운 개인이 해방의 에너지를 얻고 쓸쓸한 단독자가 수만명의 단독자들과 일시적이나마 결합되는 스포츠의 또 다른 가치의 발견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각 협회와 연맹과 구단이 새로운 브랜딩과 마케팅을 펼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곧 ‘위드 코로나’가 된다면 야외 경기장의 양대 산맥인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에서 실로 1년 반 만에 펼쳐지는 감각의 해방, 곧 격렬한 감정의 폭발이 재연되기를 바란다. 만나고 싶다. 대팍(대구FC 홈구장)에서,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설운동장에서! 불러보고 싶다. 수만명의 팬들과 함께 ‘부산 갈매기’를, ‘목포의 눈물’을, ‘연안부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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