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금, 음악은 곁에 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접종률이 올라가면서 희망을 가졌다. 한순간에 사라지다시피 한 공연들이 다시 찾아오리라는. 하지만 닿을 듯 말 듯, 다시 멀어지는 무지개처럼 공연은 왔다가 다시 멀어져갔다. 올가을도 많은 페스티벌과 콘서트가 취소되고 연기됐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그래도 숨통이 꽁꽁 틀어막힌 건 아니다. 정식 공연장으로 등록된 시설에서 열리는 행사는 다행히 가끔 보인다. 거리 두기 때문에 수익이 보장되지 않고, 따라서 적극적으로 개최되지 않을 뿐 공연에 대한 욕망과 의지는 이어지는 것이다. 오는 22, 23일 열리는 <아카이브 케이 온-우리, 지금 그 노래>라는 공연이 있다. 동아기획과 학전소극장과 관련된 뮤지션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노래한다.

SM, 하이브, JYP 같은 대형 기획사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 회사에서 데뷔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팬덤이 생긴다는 것. 즉,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든 음악 레이블이라는 점이다. 한국 음악 역사에서 브랜드가 된 레이블의 시조를 꼽자면 누구나 동아기획을 떠올릴 것이다. 조동진을 대부로 김현식과 들국화가 있었던 곳. 아니, 박학기와 시인과 촌장, 한영애와 봄여름가을, 그리고 김현철까지. 젊은 세대에게 팝이 더욱 많은 영향력을 끼치던 시절, 동아기획 소속의 뮤지션들은 우리에게도 이런 세련된 음악이 있다는 걸 말해줬다. 그들에 의해 한국 대중음악은 팝과는 또 다른, 우리말로 부르는 음악의 맛을 알려주곤 했다. TV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때지만 그들은 좀처럼 방송에 나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동아기획에서 음반이 출시되면 동네 레코드가게마다 “김현철 새 앨범 나왔어요?”라고 물으며 문을 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자존심 높았던 라디오 PD들도 동아기획 음반만큼은 홍보반이 도착하는 걸 못 기다리고 아침에 레코드 가게로 찾아갔다는 전설 같은 얘기는 동아기획의 가치를 알려주는 에피소드다.

그들이 주로 공연을 하던 곳은 대학로다. 특히 1992년 김민기가 개관한 학전 소극장은 특별한 곳이었다. 인터넷도 없었을 때니 직접 학전에 전화를 걸어 “이번주 공연 누구예요?”라고 묻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나온다고 하면 주말 오후부터 가서 줄을 섰다. 김광석의 장기 공연은 할 때마다 매진이었고, 동물원이나 장필순 같은 이들의 공연 또한 미어터졌다. 사람들 간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공연의 온기는 높았다. 객석의 숨소리가 들렸고, 가수의 미세하게 떨리는 눈빛이 보였다. 지금에 비하면 공간도 조명도, 음향도 열악했지만 음악은 본질로 존재했다. 공연이 끝나면 대학로를 기웃거리며 술집을 찾아헤매다가 그날 무대에 선 가수와 마주치는 일도 특별한 건 아니었다. 그에게 술이라도 한 잔 얻어 마셔야 운이 좋다 할 수 있었다.

‘위드 코로나’를 목전에 두고 열리는 <아카이브 케이온-우리, 지금 그 노래>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지난 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연 산업은 규모의 경제 영역이 됐다. 많은 자본과 시스템이 투여된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공연 산업이 마지막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방역중심주의와 위드 코로나의 가교 역할이 될 공연들이 필요하다. 음악과 사람만으로 충분하고, 많은 설명이 필요없는 그런 공연 말이다.

김현철, 박학기, 조규찬, 동물원, 여행스케치, 장필순, 함춘호, 유리상자. 이 공연의 출연진이 그렇다. 추억 속에 존재하되,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스스로 클래식이 된 음악을 부르고 노래한다. 세월과 함께 노쇠할 수밖에 없는, 육체의 음악이 아닌 늘 단련해온 성대의 힘으로 무대에 선다. 그때 그대로의 음악으로, 지금 이곳의 조명 아래 호흡한다. 지칠 대로 지친 코로나19 시대의, 위치를 알 수 없는 어느 지점에서 다시 듣고 보는 그들의 공연은 우리에게 조금 더 버틸 힘을 줄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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