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교회를 공화국 위에 두고 있나읽음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의 손바닥발 무속 논란이 뜨겁습니다. 무속신앙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밝힌 황교안은 윤석열 전도를 외쳤고, 유승민은 천공 선생과의 관계를 추궁했습니다. 천공 선생을 손으로 암을 치유했다는 등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몰았죠. 당황한 윤 후보는 성경책을 들고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찾았습니다. 이런 논란 뒤에 무속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습니다. 윤 후보 본인 말처럼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거나, 황교안처럼 진짜 종교가 아니라는 등이 그것이죠. 하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현상”입니다. 굿을 하건, 통성기도를 하건 사람의 지식이 닿지 않는 영역을 초인의 행위로 설명하는 점은 똑같습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보통 종교인은 무속을 종교로 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한 무리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배척하는 일을 종종 봅니다. 비행을 저지른 목사는 진짜 목사가 아니라고 하거나, 이단 교회는 진짜 교회가 아니라는 식이죠. 문제가 있는 주장입니다. 공부를 못하면 학생이 아니라는 식이니까요. 그래서 앞선 예는 모두 결과와 정의를 혼용하는 오류입니다. 무속은 종교가 아니라는 지적은 옳지 않죠.

무속이 논란이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논란은 무속이어서가 아니라 종교여서야 하죠.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전문가나 시민이 아닌, 천공 선생의 조언을 받았다는 실망은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그 실망의 정도는 목사나 스님의 조언을 받는 정치인을 볼 때와 비슷해야 합니다. 기도와 믿음으로 병을 낫게 한다는 목사는 한둘이 아닙니다. ‘황당한 이야기’는 성경책에도 수도 없이 많죠. 반대로 천공 선생의 가르침에는 어느 종교지도자나 할 법한, 평범한 소리가 많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손바닥에 왕 자를 썼고, 조언을 구했을 뿐 종교를 정치화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윤석열 후보를 정조준한 황교안은 전광훈 목사와 공모해 극우정치를 부활시켰습니다. 절차를 따르고 결과에 승복한다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죠. 우파교회의 정치세력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1987년 여의도광장 대형기도회를 시작으로 교회의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습니다. 이름은 기도회지만 주장은 재벌 지지, 주한미군 철수 반대, 북한 핵 포기 등 정치적 성격이 강했죠. 2008년 조용기 목사는 “광우병 괴담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이명박) 정부를 무력화하는 사탄의 계략이다”라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 퀴어축제에 저주를 퍼붓기도,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앞에서 행패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기독정치세력은 우익 이데올로기 몰이로 사회를 경직시키고 나라를 분열하는 데 일조해왔죠. 정치인들은 종교의 정치화를 막기는커녕, 비위를 맞추며 표몰이를 이어갔습니다.

정치와 종교의 파괴적 공조는 동서고금에서 흔합니다.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에도 기독교 세력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전쟁은 이슬람 과격화를 불러왔고 종교전쟁화됐습니다. 이슬람국가(IS)도 여기서 탄생했죠. 미국 국내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파시스트적 정치 행태도 교회의 지지가 있어 가능했죠. 중동, 미국, 한국을 가릴 것 없이 이들은 정치와 종교 분리의 원칙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30년 전쟁 등 피비린내 나는 희생을 내고 가까스로 세운, 현대국가 모델의 근간을 흔드는 셈이죠.

무속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종교 세력은 무속이 아니라 보수교회입니다. 그렇다면 논란의 대상은 윤석열이 아닌 듯합니다. 누가 교회를 공화국 위에 두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더 급하지 않을까요. 한국에 종교분쟁이 없어 다행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청정구역으로 남으려면 보다 적극적인 시민의 감시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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