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주스가 더 맛없는 이유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화장실 가기가 힘들다는 아내를 위해 직접 과일 주스를 만들었습니다. 오렌지, 자몽, 키위 등 신선한 과일을 준비하고 물을 조금 첨가한 후 믹서기로 가는 단순한 방식인데요. 즙만 짜내는 것보다는 변비에 효과가 더 좋습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이왕 하는 김에 아들 것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시중에 파는 주스처럼 건더기는 걸러내고 즙만 담았죠. 그런데 아들 표정이 영 좋지 않습니다. 과일 주스맛이 아니라고 하네요. 좋은 과일만 엄선한 아빠표 주스보다 편의점 주스가 더 주스답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사실 가공 주스가 더 진짜 같은 것은 바로 향 때문인데요, 보통은 천연 과일을 연상케 하는 합성 착향료를 사용합니다. 산성 물질과 알코올을 반응시키면 에스터라 불리는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이 가운데 과일 향을 내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를 잘 활용하면 감쪽같이 과일의 향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아니 훨씬 더 강화할 수도 있죠.

향이 풍부해지면 맛도 좋아집니다. 실제 우리가 맛이라 느끼는 감각은 대부분 향과 관련이 많습니다.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 등의 5가지 종류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구분할 수 있는 향은 그 종류가 약 3000가지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맛은 혀의 미각세포에서 감지되는 반면, 향은 코 안쪽 윗부분 점막에 위치한 후각세포가 감지합니다. 향은 대부분 공기 중으로 확산이 잘되는 휘발성 물질이며, 그 크기가 작아 물에도 잘 녹거나 분산되는 특성이 있어 코로 들어온 다음 점막의 체액에 흡수되어 후각세포와 접촉하게 됩니다.

후각은 향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먼저 콧구멍 바깥쪽에서 들어오는 전비강성 후각, 그리고 목구멍으로부터 넘어오는 후비강성 후각입니다. 우리가 눈앞에 놓인 맛있어 보이는 요리의 향을 맡을 때는 전비강성 후각이 작용하는 것이고, 그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향은 대부분 후비강성 후각을 통해서입니다.

후각에 의한 감각은 혀로 느끼는 미각과 통합되어 우리에게 하나의 완결된 맛으로 인식됩니다. 이러한 통합적인 감각을 풍미라고도 하는데, 이는 어떤 요리의 맛과 향을 함께 아우르는 감각을 의미합니다. 뇌는 이런 통합된 감각이 마치 입안에서 일어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맛과 향을 서로 잘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좋은 재료를 사용했지만 맛이 없다면 향 관리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뛰어난 요리사라면 평범한 재료로도 향을 잘 관리해 먹음직스럽게 만들죠. 얼마 전 된장찌개로 유명한 한 맛집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된장에 여러 재료를 넣고 함께 볶은 것을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면 기존 된장과는 또 다른 향들을 만들면서 다른 된장찌개들과 차별화됐던 것입니다.

몸에 좋다고 말해도 도무지 먹으려 하지 않으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집에서 인공 향을 첨가할 수는 없으니,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과일식초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과일이 발효되면서 만들어지는 여러 향을 이용하는 것이죠. 다행히도 아들의 테스트는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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