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무엇을 할까읽음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김포엔 스님들만 다니는 대학이 있다. 공항 인근이라 비행기 지나는 소리가 들리면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고 높다란 가을 하늘이 공활하다. 오랜 시간 발길이 닿지 않은 운동장은 풀들로 무성하고, 온갖 풀들은 씨알을 잔뜩 머금었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풀이 잔디처럼 빼곡할 것이다. 수행관에서는 사미스님들이 새벽부터 예불하고, 공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몸과 마음의 청정을 유지하려 애쓴다. 출가자 특유의 걸림 없는 말이며, 꾸밈없는 얼굴, 산을 뛰어다니듯 활발한 모습들이 아름답다. 이런 광경들을 보노라니 문득 언젠가 도반 스님이 불러주었던 노래가 떠오른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은 아무도 먼저 가지 않은 길/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은 아무도 먼저 걷지 않은 길/ 저마다 길이 없는 곳에 태어나/ 동천 햇살따라 서천 노을따라/ 길 하나 만들며 걸어간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며칠 전 다큐영화를 만드는 김선아 감독이 10년 전 방영된 영화 한 편을 나에게 권했다. 다큐영화의 거장 데이비드 그루빈의 다큐멘터리 <Buddha 붓다>이다. 석가모니의 일생이 애니메이션과 벽화를 곁들여 시인, 천문학자, 정신과 의사, 철학자, 스님, 달라이라마의 이야기와 리처드 기어의 내레이션으로 꾸며져 있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에게서 우리는 어떤 특별한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불교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평범함에 대한 것입니다. 만약 그대가 깨달음을 얻고자 수련을 한다면, 그대는 길 가며 만나는 모든 이를 알아보며 이렇게 탄성을 지를 겁니다. 여기도 붓다? 저기도 붓다? 붓다?”

세계의 지성인들과 미래사회를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 거주 안희경 작가의 다큐멘터리 <Buddha 붓다>의 제작 배경에 관한 데이비드 그루빈 감독과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붓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늘 알고 있었어요. 대학 다닐 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습니다. 그때는 그다지 마음에 깊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르지만 몇 년 전부터 그 이야기가 자꾸만 제 마음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인생의 어느 시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의문을 품었던 질문들을 우리들 스스로가 하기 시작하는 그런 시간 말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말과 걸음을 배운다. 성장하면서는 형제자매와 친구들로부터 배우고, 학교의 선생님으로부터, 책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갖가지 가르침들을 배운다. 그러나 정작 한 번뿐인 소중하고 귀한 삶을 완전하게 살고 싶은 간절함을 충족시키는 가르침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완전한 삶의 길을 가셨던 분들의 자취와 말씀들에 의지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버지가 걸었던 삶의 궤적을 똑같이 살 수 없듯이 큰 스승들의 삶을 똑같이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각자의 삶이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길을 대신할 수도 없다. 오직 나의 발걸음으로 나의 삶을 한발 한발 완성해 가는 것이다. 금강경의 뗏목의 비유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성인의 가르침은 더없이 위대하고 심오하더라도 나의 길을 돕는 훌륭한 방편일 뿐이다.

되돌아보면 나의 삶은 늘 어설펐던 것 같다. 고민 많고, 방황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육조단경>의 혜능 스님처럼 한순간 확연하게 깨닫고,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든 평화롭고, 자유롭고, 무한히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에 산문(山門)에 들어왔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이룬 게 없는 것 같다. 책을 보고서도 또렷하게 기억 나는 것이 없고, 참선을 한다고 앉아 있어도 꾸벅꾸벅 졸다가 시간이 지나고 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늘 최선을 다해 오늘, 이 순간을 살아온 것이다. 지난 일을 돌아보며 ‘그때 무엇을 할 껄(걸)’과 같이 과거형인 ‘껄껄’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모든 순간을 나의 소중한 삶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을 다해 살았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경계에 부딪쳐 답답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바로 그럴 때가 그루빈 감독이 이야기하는 인생을 바라보는 그 어느 시점은 아닐까. 그 순간 선한 영향력이 도움을 준다. 부모님의 말씀, 스승의 가르침, 읽었던 책,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 한 구절이 삶의 큰 자양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가을, 내 삶의 지표가 될 스승은 어디에 계신지 찾아보자. 혹여 찾지 못했다면 깨달음의 삶을 사신 붓다의 일생을 책이나 영화를 통해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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