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과 변혁, 그리고 기후위기읽음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만물은 변한다. 인간 또한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와 관련된 두 단어 ‘변형’과 ‘변혁’은 받침 하나가 다르다. 어쩌면 말 그대로 ‘한 끗 차이’다. 양자는 변화라는 동일한 방향성 내에서 정도나 양상의 차이를 나타낼 수도 있지만, 표면적 의미의 유사성과 달리 정반대의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즉 변혁이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한다면, 변형은 오히려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으려는 욕망과 지향을 지닐 수 있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인류세와 자본세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명명마저 등장시킨 기후위기의 시대, 한국 사회에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변화가 추구되고 있다. 5월 말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출범하여 얼마전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발표되었고,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의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기후정의운동 진영에서는 ‘탄중위해체공대위’가 구성되어 격렬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으며, 탄중위 위원직을 가장 먼저 사퇴한 청소년기후행동은 오는 22일 글로벌 기후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기후정의포럼에서 출간한〈기후정의선언 2021>은 이러한 갈등과 저항이 불가피한 이유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이 팸플릿은 “기후정의운동은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변형인 녹색성장론을 거부”함을 분명히 하면서, 지금의 위기는 “자본주의적 성장 체제를 변혁하지 않고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요컨대 현재 정부와 자본이 주도하는 녹색성장은 “물이 넘치는데 수도꼭지는 잠그지 않고 배수구만 뚫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후위기에 대한 주류 권력의 이 같은 대응 방식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서 대동소이하게 나타난다. 탄중위의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과 같은 시기 발표된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의 ‘탈시설 로드맵’ 또한 시설 체제를 영속화하기 위한 거주시설의 변형안에 다름 아니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소위 착한 성장을 추구하듯 이 로드맵은 좋은 시설을 추구할 뿐이다. 기후위기와 시설 문제에 대한 이 사회의 대응에서 나는 ‘변형’과 ‘변혁’의 화해 불가능한 대립을 본다.

변혁은 근본적인 단절의 계기를 내포하며, 그러한 단절을 위해서는 결집된 힘을 통한 충격이 필요하다. 가수 이랑은 3집 타이틀곡 ‘늑대가 나타났다’에서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라고 노래한다. 나는 이 가사의 ‘가난’을 ‘기후위기’로도 바꿔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늑대로 호명되는 민중들은 기후정의운동이 이야기하는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이기도 할 것이다. 가난과 기후위기를 생산해내는 것은 동일한 시스템이며,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 산불, 한파, 가뭄, 대홍수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도 가난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변혁은 단호하지만, 그 변혁을 위해 힘을 모으는 일은 지난하고도 여러 동요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이 없듯, 불타는 지구 위에 중립은 없다. 탄소중립을 넘어선 기후정의운동은 지금 여기의 삶을 위한 실천이며, 탈시설 역시 기후정의가 추구하는 필요 기반의 상호의존 경제와 만날 때 온전히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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